[신뢰 잃은 신용평가사 '수술'] 로비 받고 등급 조정…3대 신용평가사 '검은 관행' 손본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개혁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모기지(부동산담보대출) 사태,유럽의 재정위기 등에 따른 거듭된 금융위기를 사전에 경고하지 못한 책임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평사들은 문제가 된 국가의 신용등급을 사후에,그것도 일시에 몇 단계씩 떨어뜨려 금융 불안만 더 키웠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신평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방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마련해왔다. 미 상원에서 가결된 증권거래위원회(SEC) 산하 채권평가위원회 신설 방침도 같은 맥락이다.
◆3대 신평사 독과점 구조가 문제

신용평가사 문제는 독과점적인 시장구조가 가장 큰 요인이다. 3대 평가사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95% 정도이며,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에서도 90%를 웃돈다. 하지만 독과점 문제를 지적하는 자체가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못했고 실질적인 개혁도 이뤄지지 않았다.

신용평가를 받는 피평가자가 수수료를 전부 부담하는 체계에서는 평가사와 피평가자 간 이해상충 문제가 생긴다. 피평가자들의 등급쇼핑(rating shopping) 노력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이렇다보니 심지어 신용평가사를 전담하는 현지법인을 신평사 주변에 두면서 좋은 신용등급이 나오도록 '공을 들이는' 피평가 회사들도 많다. 신용평가의 기본원칙이어야 할 '평가사와 피평가자 간 분리'가 지켜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대형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도덕적 해이도 허다히 발생했다.

◆신평사 규제 공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에 개혁의 칼을 들이댄 것은 미 SEC,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다. 정보공시 투명성 책임을 크게 강화한 게 대책의 핵심이다. 신평사로 하여금 신용평가 방법,과거 실적자료 등을 공시하게 하고 신용등급 산정 모형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한 게 대표적이다. 또 신용평가사 관련 이해관계에 대한 공시 확대,신용평가업무의 독립성 확보와 같은 이해상충 방지 장치도 마련했다. 특히 등급쇼핑을 막기 위해 모든 신평사의 의견을 공개하는 한편 신평사의 연 순익 중 10% 이상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형 고객 정보도 공개토록 했다.

평가등급 개편과 관련해 눈여겨 볼 사안은 파생상품 등 각종 금융상품의 손실 가능성과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정보를 별도로 제공하고 신용등급의 민감도를 표시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채권별 신용등급 설정 업무에 대한 특성과 한계점도 명시할 전망이다. 국제결제은행(BIS) 등은 기존 신용등급 뒤에 신용등급 변동성(v),신뢰도(c),독립변수의 질적 정보(q)와 지표를 추가하라고 제안했다. 이런 내용이 채택되면 기존의 신용등급 체계에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그리스 스페인보다 한국의 등급이 낮은 의문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신평사 개편 예고

개편방안에도 불구하고 이해상충 문제의 주요인인 피평가자의 수수료 부담 체계,과점 시장 등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는다. 신종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방안 역시 시급하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기자본규제,중앙은행의 적격담보 요건,투자 대상 증권 기준 등을 정할 때 신평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인 평가 기준을 추가적으로 마련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평가사 설립도 시급한 과제인데 조만간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결과도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상춘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