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미분양 400채 사겠다" 결말은?
전모씨는 2009년 8월 대부업자 인모씨로부터 빌린 100억원 입금통장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사진)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인 삼성물산 측에 보여줬다. 미분양 물량 240~400채를 통째로 사들일 수 있는 자금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전씨는 아파트를 저가에 통매수한 후 일반인들에게 비싸게 분양해 차익을 남기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대부업자에게는 100억원을 1주일 동안 빌리면서 이자로 4300만원을 줬다. 그러나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는 통장 돈 100억원이 현금이 아닌 약속어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전씨의 제의를 거절했다. 꼼짝없이 이자만 날린 전씨는 법원을 찾았다.

서울 강남과 잠실 일대 미분양 아파트를 통매수하려던 '통큰'업자들이 매입에 실패한 후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아파트 통매수는 소문으로 나돌았으나 서울 강남에서 실체가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전씨가 통매수에 성공했다면 대규모 시세차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37민사부(재판장 임영호)는 전씨가 대부업자 인씨를 상대로 낸 아파트 매입 자금에 대한 1억23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최근 기각했다. 재판부는 "전씨와 인씨 간에 대출약정을 체결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전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6월 주식회사 G사와 "잠실 H아파트의 미분양 물량 100채를 소유자인 재건축정비사업조합으로부터 공동으로 통매수해 분양키로 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조합 등에 자금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채를 빌리기로 한 전씨는 인씨를 찾았다. 전씨는 인씨로부터 50억원을 1개월 동안 빌리는 대신 선이자를 지급하기로 하고 8000만원을 인씨 계좌로 입금했다. 전씨는 또 같은 해 7월 G사와 반포 삼성래미안퍼스티지의 미분양 아파트 240~400채를 재건축 조합과 삼성물산으로부터 통매수하기로 계약을 맺고 이번에는 이자로 4300만원을 내고 인씨로부터 100억원을 1주일 동안 빌리기로 했다.

그러나 인씨가 약속한 돈을 입금해주지 않았고,이에 따라 조합들과의 통매수 계약 체결이 불발됐는데도 인씨가 이자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전씨의 주장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인씨가 돈을 빌려준 것은 전씨가 아닌 정모씨로 보이고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정씨가 소송을 제기해 인씨가 대출약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다퉈야 한다"고 판결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미분양 아파트 통매각을 추진한 것은 맞다"며 "오히려 통매각이 불발돼 나중에 제값에 팔아 회사로서는 이익이었다"고 말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잠실 H아파트는 지난해 6월 109㎡(33평)형이 9억5500만원에서 이달 9억9500만원으로,148㎡(44평)형이 15억5000만원에서 15억7000만원으로 오르는 등 평형별로 2000만~4000만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반포 래미안퍼스티지는 116㎡(35평)형이 12억6500만원에서 14억원으로,165㎡(50평)형은 21억원에서 23억원으로 상승하는 등 1억~2억원 올랐다.

만약 전씨 등이 당시 시세대로만 샀다 해도 세금을 고려하지 않을 때 260억~84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었던 셈이다. 흔히 통매각은 최저 반값으로도 진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차익은 더 커질 수 있다. 앞서 GS건설도 지난해 5월께 래미안퍼스티지 인근 '반포 자이' 아파트 미분양 물량 및 회사 보유분 159채를 다올랜드칩사모부동산신탁 24호에 자산유동화를 맡기는 통매각을 단행한 적이 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