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첼리스트 정명화씨, "92세 어머니 위해 鄭트리오 올 가을엔 뭉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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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첼로는 2층에 있었다. 전망 좋은 테라스를 끼고 있는 예술가의 방.서가 한쪽에 비스듬히 기대 선 은빛 케이스를 열자 279년 된 '보물'의 속살이 드러났다. 세계 최고의 명기(名器)로 꼽히는 173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이탈리아풍 스탠드의 은은한 빛을 받아 더욱 신비로운 자태."국내에 하나밖에 없어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평생 동안 만든 바이올린은 1200대 정도 되지만 첼로는 60대에 불과하거든요. 뉴욕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샀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씨(66).그가 천천히 활을 들고 눈을 감았다. 손끝을 움직이자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율이 방 안을 감쌌다. 케 데르벨루아의 '안단티노'였다. 모든 악기 중에서도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첼로.그가 첼로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한몸을 이뤄 춤을 추는 것 같았다.
300년이 훨씬 넘은 이탈리아산 가문비나무의 촘촘한 나이테에서 나오는 소리일까. 몸체에 칠한 도료의 마법일까. 조심스레 만져본 명기의 촉감은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했다. 고급 마호가니 가구 위에 우아한 벨벳을 덧씌운 듯한 느낌.몸체의 재질보다 영혼의 질감으로 대화하는 악기.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
도대체 이 명기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까지 듣고 나서 물어봤다. "가격을 매길 수 없죠.내 악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평생 보관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려준다는 기분으로 갖고 있죠.제일 오래 보관하는 사람의 이름이 첼로에 붙는데 이건 브라가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 "
하긴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에서도 100억원을 훨씬 넘는 진품이니 설명이 필요없다. "비행기 탈 때마다 티켓을 두 장씩 끊어 옆자리에 모시고 다닌다"며 웃었다.
봄비가 한 차례 신록의 북한산을 헹구고 지나간 오후.구기동 자택에서 만난 정씨의 표정은 마냥 밝았다. 17세에 줄리아드음악원으로 떠나던 그 때도 그랬다.
줄리어드에서 그는 하루 7~8시간씩 연습에 몰입했다. 그랬더니 손가락이 너무 아프고 짓물렀다. 그의 손은 아주 부드럽다. 굳은 살이 박히지 않고 말랑말랑하다. 그래서 현에 닿는 느낌이 좋고 소리도 더 좋다. "굳은 살이 많으면 손이 잘 아프지 않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5시간이 최고 연습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요즘은 오전에 2시간 정도 해요. 쉬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
정경화씨 손가락 부상 후 6년 만에 공연 재개
그는 요즘 새로운 일정을 잡느라 부산하다. 6년 만에 정트리오 공연을 재개할 생각이다. "얼마 전에 동생(정경화)이 5년 만에 연주했잖아요. 그동안 동생 손가락 부상 때문에 공연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데 1주일 전부터 서로 스케줄을 보면서 공연 날짜를 잡고 있어요. 늦가을로 예정하고 있는데 늦으면 내년 초가 될지도 모르죠.올해 92세인 어머니를 위해 빨리 하고 싶어요. 너무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싶어요. "
2004년 어머니의 86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정트리오를 재결성한 이후 6년 만이다. 어머니 이원숙씨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정트리오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미국에서 한식당을 경영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해온 어머니는 6 · 25 때 피난 트럭에 피아노를 꽁꽁 묶어 갈 정도로 열성이었다. 그때 명화씨는 여섯 살이었고 동생 경화는 두 살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들의 특성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으셨어요. 각자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고 개개인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칭찬해주셨죠.단점이 있었지만 잘하는 것을 더 크게 보셨는데,사실 예술이라는 것이 자기가 잘하는 것을 살리는 것이잖아요. 일생 동안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가 형제끼리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거 정말 쉽지 않아요. 애 키워보니깐 더 그렇더군요. "
연 30회 연주…1200회 넘도록 펑크낸 적 없어
그는 아직도 1년에 30회 정도 무대에 선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니까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데뷔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연주회를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교토 공연 때에는 침을 맞아가면서 했다. 40여년 째 몸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사실 '타고난 체질' 덕분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노력파다. 올해 40주년 음반을 낸 데 이어 내년에는 소품집과 소나타 앨범을 낼 계획이다. 그러면서도 학생들 가르치고,연주 프로그램 짜주고,콩쿠르 도와주고,쉴 틈이 없다.
단 한번 첼로를 손에서 놓은 적 있다. 그것도 딱 1주일."AP통신 로마 특파원으로 발령난 남편(구삼열 현 서울관광마케팅 대표)과 함께 이탈리아에 살 때 어느 날 다른 것도 할 게 많은데 첼로를 그만두자고 마음 먹었죠.그런데 다른 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딸들이 하도 성화를 부려서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시작했어요. (웃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꼽는 요소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음악하는 사람에게 특히 그렇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거죠. 잘난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재주가 부족한 사람에게도 배우는 게 인생입니다. 학교에서도 그래요. 재주 있는 아이들은 빨리 도착하지만 천천히 가면서 답을 찾아 높은 데 오르는 아이들도 있어요. 재주 있는 학생들이 오히려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
그래서 그는 사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책도 논픽션을 좋아한다. "자서전이 좋아요. 시나 소설도 가끔 읽긴 하지만 실존인물의 삶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씨(66).그가 천천히 활을 들고 눈을 감았다. 손끝을 움직이자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율이 방 안을 감쌌다. 케 데르벨루아의 '안단티노'였다. 모든 악기 중에서도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첼로.그가 첼로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한몸을 이뤄 춤을 추는 것 같았다.
300년이 훨씬 넘은 이탈리아산 가문비나무의 촘촘한 나이테에서 나오는 소리일까. 몸체에 칠한 도료의 마법일까. 조심스레 만져본 명기의 촉감은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했다. 고급 마호가니 가구 위에 우아한 벨벳을 덧씌운 듯한 느낌.몸체의 재질보다 영혼의 질감으로 대화하는 악기.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
도대체 이 명기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까지 듣고 나서 물어봤다. "가격을 매길 수 없죠.내 악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평생 보관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려준다는 기분으로 갖고 있죠.제일 오래 보관하는 사람의 이름이 첼로에 붙는데 이건 브라가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 "
하긴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에서도 100억원을 훨씬 넘는 진품이니 설명이 필요없다. "비행기 탈 때마다 티켓을 두 장씩 끊어 옆자리에 모시고 다닌다"며 웃었다.
봄비가 한 차례 신록의 북한산을 헹구고 지나간 오후.구기동 자택에서 만난 정씨의 표정은 마냥 밝았다. 17세에 줄리아드음악원으로 떠나던 그 때도 그랬다.
줄리어드에서 그는 하루 7~8시간씩 연습에 몰입했다. 그랬더니 손가락이 너무 아프고 짓물렀다. 그의 손은 아주 부드럽다. 굳은 살이 박히지 않고 말랑말랑하다. 그래서 현에 닿는 느낌이 좋고 소리도 더 좋다. "굳은 살이 많으면 손이 잘 아프지 않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5시간이 최고 연습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요즘은 오전에 2시간 정도 해요. 쉬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
정경화씨 손가락 부상 후 6년 만에 공연 재개
그는 요즘 새로운 일정을 잡느라 부산하다. 6년 만에 정트리오 공연을 재개할 생각이다. "얼마 전에 동생(정경화)이 5년 만에 연주했잖아요. 그동안 동생 손가락 부상 때문에 공연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데 1주일 전부터 서로 스케줄을 보면서 공연 날짜를 잡고 있어요. 늦가을로 예정하고 있는데 늦으면 내년 초가 될지도 모르죠.올해 92세인 어머니를 위해 빨리 하고 싶어요. 너무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싶어요. "
2004년 어머니의 86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정트리오를 재결성한 이후 6년 만이다. 어머니 이원숙씨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정트리오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미국에서 한식당을 경영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해온 어머니는 6 · 25 때 피난 트럭에 피아노를 꽁꽁 묶어 갈 정도로 열성이었다. 그때 명화씨는 여섯 살이었고 동생 경화는 두 살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들의 특성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으셨어요. 각자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고 개개인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칭찬해주셨죠.단점이 있었지만 잘하는 것을 더 크게 보셨는데,사실 예술이라는 것이 자기가 잘하는 것을 살리는 것이잖아요. 일생 동안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가 형제끼리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거 정말 쉽지 않아요. 애 키워보니깐 더 그렇더군요. "
연 30회 연주…1200회 넘도록 펑크낸 적 없어
그는 아직도 1년에 30회 정도 무대에 선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니까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데뷔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연주회를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교토 공연 때에는 침을 맞아가면서 했다. 40여년 째 몸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사실 '타고난 체질' 덕분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노력파다. 올해 40주년 음반을 낸 데 이어 내년에는 소품집과 소나타 앨범을 낼 계획이다. 그러면서도 학생들 가르치고,연주 프로그램 짜주고,콩쿠르 도와주고,쉴 틈이 없다.
단 한번 첼로를 손에서 놓은 적 있다. 그것도 딱 1주일."AP통신 로마 특파원으로 발령난 남편(구삼열 현 서울관광마케팅 대표)과 함께 이탈리아에 살 때 어느 날 다른 것도 할 게 많은데 첼로를 그만두자고 마음 먹었죠.그런데 다른 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딸들이 하도 성화를 부려서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시작했어요. (웃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꼽는 요소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음악하는 사람에게 특히 그렇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거죠. 잘난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재주가 부족한 사람에게도 배우는 게 인생입니다. 학교에서도 그래요. 재주 있는 아이들은 빨리 도착하지만 천천히 가면서 답을 찾아 높은 데 오르는 아이들도 있어요. 재주 있는 학생들이 오히려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
그래서 그는 사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책도 논픽션을 좋아한다. "자서전이 좋아요. 시나 소설도 가끔 읽긴 하지만 실존인물의 삶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