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문용린 前교육부 장관 "부자에 대한 적대감 가르쳐서야…'정당한 富' 경제교육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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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선생님.죄송합니다. 자주 인사를 못 드려서요. 건강하시죠?"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만난 문용린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장관)는 은사들에게 일일이 안부전화를 하고 있었다. 문 교수는 "대학 졸업 후 40년간 스승의 날마다 인사를 드리고 카네이션을 보낸다"며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와 달리 2시간가량 이어진 대화는 무겁게 진행됐다. 교육계가 연초부터 교장비리,건설비리로 몸살을 앓았고 전교조 명단 공개와 반(反)시장 교과서 문제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계가 잇따른 비리로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육계 권력구조(파워 스트럭처)가 도덕적 타락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교육감 한 사람한테 힘이 너무 몰려 있는 것이 문제죠.서울시교육청은 한 해 8조원을 씁니다. 그걸 모두 교육감이 주무르지요. 10만명의 교사들을 승진시키고 이동 배치하는 게 교육감 한마디면 끝입니다. 이런 게 밀실에서 주물러지는 거예요. 모든 조직이 교육감 눈치만 보게 돼 있어요. 거듭 말하지만 교육감이 혼자 모든 권한을 갖고 인사와 예산을 주무르는 한 고쳐지지 않을 거예요. 교장이 교육감의 파트너이지 수하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교육감이 권한의 많은 부분을 교장에게 넘겨줘야 해요. "
▼교사 얘기를 더 해볼까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요.
"학생들에게 교사의 생각을 주입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교사의 판단(전교조 등 특정집단의 교육을 의미하는 듯했다)에 따라 뭐가 나쁘고 좋다는 식으로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이죠.한마디로 열린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사는 장 · 단점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비교해 볼 수 있도록 근거만 제시해주면 됩니다. 판단은 학생 각자의 몫입니다. 요즘 정도를 벗어난 교사들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의 견해를 가르친다면 그건 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교사라면 오히려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를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은 교사 개인의 신념을 주입시켜 달라고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전교조 명단 공개 논란에서 보듯 많은 학부모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
▼교과서 내용 중 부(富)에 대한 경제교육이 잘못됐다는 목소리도 많은데요.
"우리는 정당한 방법과 절차를 거쳐 부자가 됐으면 인정을 해줘야 하는데 결과만 보고 있어요. '왜 부자냐?'는 식의 적대감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당한 부의 개념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동을 겪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의 평등과 함께 서로가 경쟁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성과를 얻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반기업 정서 같은 것도 다 잘못된 교육 때문이지요. "
▼소유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셨는데요.
"소유에 대한 의식을 정말로 바꿔야 합니다. 뇌물을 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임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저건 내가 안 받아도 누군가는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정만 허락한다면 쉽게 받게 됩니다. 초 · 중 · 고 때부터 소유의 개념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니면 아예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그런 의미에서 경제교육이 더욱 중요합니다. 한국 경제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육입니다. "
▼자율과 경쟁을 내세운 현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적으로 옳은 방향입니다. 자율과 경쟁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대해 저는 고민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학교 규모를 작게 만드는 정책이 꼭 필요합니다. 현재 초 · 중 · 고는 너무 커요. 전교생이 최대 400명을 넘지 않도록 학교를 잘게 나눠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경쟁도'잘'하게 돼요.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의 기회도 많아집니다. 학교 관료화도 줄어듭니다. 지금은 단순히 일반고 대 특목고의 구도입니다. 일반고를 더욱 작게 만들어 일반고끼리 경쟁을 유도해야 합니다. 작게 만들면 만들수록 더 잘 보이는 법이죠.작은 학교는 조금만 열심히 해도 금방 이름이 납니다. 소규모화하면 할수록 교육생산성도 올라갈 것입니다. "
▼대입 제도에 만족하십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대입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다시 얘기하지만,초 · 중 · 고 교육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국내 초 · 중 · 고 교육과정은 교과목 중심으로만 치우쳐 운영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아니라 그냥 '교과과정'일 뿐이지요. 일주일에 40시간 중 38시간이 교과목 수업입니다. 초 · 중 · 고에서 교과학습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많이 갖게 함으로써 자기 인생에 대한 방향을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그게 안 되니까 자기만의 인생 방향 없이 모두 몇몇 명문대 인기학과로만 몰리는 것이죠.국내에 4년제 대학만 200여개,학과 종류는 130여개에 달합니다. 그만큼 골고루 가면 좋은데 해마다 70만명의 수험생이 특정 대학 및 학과로만 몰리는 병목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교과 외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의 진로 교육을 충실히 시키는 것입니다. "
▼평소'끄집어내는'교육을 강조하셨죠.
"학생의 숨겨진 호기심과 소질,적성을 끄집어내자는 것이죠.학생의 소질과 적성은 개인마다 모두 다릅니다. 초 · 중 · 고에서는 내가 뭘하면 재밌을지,잘 배울 수 있을지를 알게 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에 맞는 공부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우리는 소질과 적성은 따지지 않고 국 · 영 · 수 등 교과목부터 우선 배우고 있습니다. 그 다음 학생에게 해보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는 것은 거꾸로 된 것입니다. 좋아하고,잘하는 것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
▼고3 학생들이 창의교육을 못 받고 있는데요.
"한번은 고교 3학년 학생들에게 백지를 주고 앞으로 뭘하고 싶은지 써보라고 했어요. 어떤 답이 나왔는지 아세요. 한 학생 얘기입니다만,수능 점수를 받아봐야 알겠다며 백지를 내더군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적성과 소질에 맞게 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점수에 맞춰 꿈을 만드는 것이죠.사람의 꿈은 초 · 중 · 고 시절에 생깁니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꿈도 많을 때죠.우리는 그 시기에 다른 것은 다 필요없으니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합니다. "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제 자체는 옳은 방향입니다. 다만 우리는 초 · 중 · 고에서 교과목 중심의 수업만 이뤄지다 보니 입학사정관이 뭘 보고 학생을 뽑을 수 있겠습니까. 대학에서 지원자의 경험과 활동 등 모든 것이 담긴 서류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내신성적과 수능점수밖에 볼 것이 없죠.더군다나 지난해와 올해 갓 채용된 입학사정관들 대부분이 대학에서 막 박사학위를 끝낸 정도의 수준입니다. 거기에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있죠.그들이 제대로 학생을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당분간 계속해서 부딪칠(잡음이 날) 문제입니다. "
▼스승의 날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매년 스승의 날은 씁쓰레한 소문과 함께 시작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전교조 가입 교사의 명단 공개를 놓고 물밑에서 고래 싸움이 벌어져 시끄러워요. 선생님들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서로에 대한 적대적 불신이 일을 크게 만들었어요. 스승의 날에 볼썽사나운 대립을 보여줘선 안 되는데.잠시나마 그런 대립을 잊고 스승과 제자 간 아름다운 관계를 음미하고 다짐하는 날이 됐으면 합니다. 스승 자신이 스승됨을 자문하고 자성하는 자기성찰의 날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김일규/정태웅 기자 black0419@hankyung.com
문용린 교수는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바람 잘 날 없는 교육계에서 지난 30년간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다뤄본 권위자로 통한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재직시절 감성지수(EQ) 등 다중지능이론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했다. 지난 3월 전격 시행된 '교원평가제'도 문 교수가 화두를 던진 대표적인 정책이다. 2000년 교육부 장관 시절에 도입 의사를 밝혔으니 꼭 10년 만에 열매를 맺은 셈이다. 문 교수는 "우리 사회에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분야가 없는 만큼 교사들이 알레르기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평가 결과를 인사에 연계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프로필=1947년 출생,서울대 교육학 학 · 석사,미네소타대 교육심리학 박사,1986~1989년 한국교육개발원 도덕교육연구실 실장,1996~1998년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2000년 1~8월 제40대 교육부 장관,현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및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