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5) 한발 앞서 신제품 내놓고 '기술카피' 못하게 철통보안
교토부(府) 나가오카교시(市)에 있는 무라타제작소 본사.홍보팀의 세기구치 하루미 과장은 본사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허락없이 사진을 찍어선 안 된다"는 말부터 꺼냈다. 사진 취재를 위해 연구실에 갔을 때는 촬영이 가능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사진 촬영이 끝났을 때는 일일이 허용한 것 이외의 사진이 찍혔는지 확인했다.

전자부품업계의 선두 주자인 무라타제작소의 경영 전략은 한마디로 '선점 후 리드'다. 이 회사는 항상 후발 주자에 앞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 신제품의 기술 노하우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다. 제품을 뜯어봐도 흉내낼 수 없다. 경쟁자가 허둥대는 사이에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다. 따라올 정도가 되면 진일보한 신제품을 내놓는다. 기술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자부품업계의 황제

무라타제작소의 주력 상품은 세라믹을 이용한 전자부품이다. 이 소재에서 1만 가지 이상의 전자부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휴대폰 PC(개인용컴퓨터) TV 디지털카메라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세라믹필터 세라믹발진자 마이크로파필터 등을 생산한다. 이런 부품이 없으면 전자제품 생산은 불가능하다. 적층세라믹콘덴서의 경우 휴대폰 한 대엔 200개,PC엔 500개,TV엔 1000개 이상이 필요하다.

세계 시장 점유율 1등을 기록 중인 제품도 많다. 적층세라믹콘덴서 노이즈필터 등이 세계 시장의 3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세라믹필터와 세라믹발진자 부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무라타제작소가 문을 닫으면 세계 휴대폰 10억대가 불통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경영 성적표도 놀랍다. 최근 10년간(1999~2008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이 15%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평균 영업이익률은 20% 정도다. 이러니 일본 굴지 전자회사인 파나소닉의 나카무라 구니오 사장조차 세계 3대 벤치마킹 대상 기업 중 하나로 무라타제작소를 꼽는다.

◆흉내낼 수 없는 기술

공을 들여 만든 기술도 남이 쉽게 베껴 버리면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무라타제작소는 후발주자들의 모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독특한 방어막을 구축했다. 이 회사는 우선 원재료인 세라믹을 자체 생산한다. 세라믹은 굽는 사람의 노하우나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완전히 다르게 나온다. 수십년간 축적된 노하우에서 나온 원재료를 후발주자들이 흉내내기는 쉽지 않다.

전자 부품 생산에 쓰이는 장비도 자체 생산한다. 범용 장비는 외부에서 조달하고,품질경쟁력과 관련이 있는 핵심 장비를 내부에서 만들어 쓴다. 후지다 요시다가 부사장은 "원재료 생산,성형,굽기,조립 등의 제품 생산 과정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블랙박스화되기 때문에 후발 주자들이 단기간에 따라하기 힘들다"고 자신했다.

◆대기업병 막는 매트릭스 조직

무라타제작소는 2010년 3월 기준으로 연간 매출액 5308억엔(약 6조3700억원),종업원 3만3431명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그래도 대기업병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기업병을 막는 특효약은 매트릭스 조직과 독립채산제다.

무라타제작소는 조직을 가로 세로로 얽힌 매트릭스 구조로 잘게 쪼갰다. 세로축은 △연구개발 △제조 △판매 부문으로 나뉜다. 가로축은 △원재료 △반제품 △완성품 등으로 구분된다. 가로축과 세로축이 만나는 곳마다 하나의 조직이 탄생한다.

소조직의 관리 기능은 본사 스태프들이 담당한다. 조직마다 관리자를 두면 간접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일본 소재 그룹사는 모두 3000개 정도의 독립된 소조직으로 세분화돼 있다.

소조직은 서로 제품을 사고 판다. 판매부문이 제조부문으로부터 제품을 사는 식이다. 이때 매입가격과 사외 판매가격의 차이가 판매부문의 영업이익이 된다. 여기에 본사 공통비용인 일반관리비와 연구개발비의 일정 비율을 빼면 순이익이 된다. 매트릭스 조직의 최대 장점은 어느 분야에 강점이 있고,어느 분야에 약점이 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성과를 정확히 평가해 보수체계를 조정할 수 있다. 조직내엔 항상 긴장감이 흐른다. 후지다 부사장은 "70개가 넘는 전세계 관계사들이 모두 매트릭스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토=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