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 해법' 딜레마] 재정긴축→디플레·더블딥…유럽 '악순환의 늪'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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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英…재정지출 축소·임금삭감 확산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위기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유럽 각국이 재정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긴축정책'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오히려 긴축정책이 유럽 경기회복의 발목만 잡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유로존 4위 경제국인 스페인이 슬로베니아,포르투갈,아일랜드에 이어 디플레이션 국가 대열에 합류하면서,유럽 각국의 재정적자 감축 계획 이행 여부보다는 긴축정책이 가져올 경기둔화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해 7500억유로의 재정안정기금 마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란 비관론이 힘을 얻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디플레이션 공포가 위기극복에 대한 시장 신뢰를 급속히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위기처방으로 '긴축정책' 확대
유럽 주요국은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 '전염'을 막기 위해 7500억유로 규모의 재정안정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동시에 각국은 잇따른 긴축'처방전'을 채택했다. '제2의 그리스'로 거론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잇따라 긴축안을 마련했고,사상 최대 재정적자 부담에 직면한 영국도 신정부 등장과 함께 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주 스페인 정부는 올해 공공부문 임금을 5% 삭감하고 내년엔 동결키로 하는 내용의 재정긴축안을 발표했다. 스페인은 내년까지 총 150억유로의 재정적자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포르투갈도 고위직 공무원의 임금을 5% 깎고,부가가치세를 1% 인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 20억유로 규모의 재정을 긴축키로 했다. 12억유로가 드는 타구스강 다리 건설 계획도 잠정 연기했다. 포르투갈은 앞으로 4년간 총 110억유로가량 재정적자 규모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영국 역시 보수 · 자민당 연정이 공식 출범하며 처음으로 내놓은 정책이 각료들의 올해 임금을 5% 삭감한 후 5년간 동결한다는 것이었다. 연정은 또 올해 안에 공공지출을 60억파운드 줄이기로 합의했다. 아일랜드도 공무원 임금을 5~20% 삭감해 10억유로를 절약키로 했다. 이탈리아는 61억유로가 소요되는 시칠리아대교 건설을 중단하고 해외 계좌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세금탈루에 철퇴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독일과 프랑스도 '허리띠 졸라매기'에 동참했다. 독일은 연금 수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기로 했다. 프랑스는 내년부터 3년간 정부 지출을 동결하고,파리 주변 주요 도로의 야간 조명을 꺼 연간 300만유로를 줄이기로 했다. 독일주간 슈피겔은 "독일 정부가 유로존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동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17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방안이 채택될 경우 유럽에서 재정긴축의 강도는 더욱 세질 전망이다.
◆재정적자 해소와 성장의 딜레마
유럽 전역이 이처럼 대대적인 '긴축재정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결과는 당초 기대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재정위기 확산 차단효과가 아니라 긴축정책 탓에 그나마 미약했던 경기회복 기류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만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파이낸셜타임스(FT)는 "긴축정책이 유럽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긴축정책이 경기침체를 가져오면 이는 다시 재정위기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 주말 발표된 4월 스페인의 물가지표가 1986년 이후 처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자 '긴축정책발 디플레이션 공포'가 세계증시를 뒤덮었다. 스페인은 실업률이 20.05%(1분기 기준)로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데다 국내총생산(GDP)이 7분기 연속 하락하는 부진이 겹치면서 핵심인플레이션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0.1% 하락했다. 이처럼 경제가 취약한 상태에서 지난주 발표된 150억유로 규모 재정긴축안은 경기회복세를 더욱 둔화시킬 것이란 우려를 현실화하기에 충분했다.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그리스뿐 아니라 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도 몇 년간 이어질 긴축 정책으로 경제성장 저하와 디플레이션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정긴축정책이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시나리오는 긴축안을 발표한 대다수 유럽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여서 심각성이 더하다. 재정위기에 처한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를 비롯해 재정적자 문제로 고전 중인 영국 등은 모두 리먼사태 이후 경제위기에서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긴축을 미룰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쥐트도이체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적자 감축과 야심찬 경기회복 정책을 양립하는 것은 어려운 목표로 이를 실행하는 데는 험난한 선택들이 산재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여기에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 위기의 유로존 확산을 막기 위해 7500억유로의 대형 처방책을 내놓았지만 "일시적인 단기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시장의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긴축안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이 유럽 각국의 고민이다. 재정안정기금 조성과 집행 과정에서도 각국 의회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