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가정신의 상징이 된 류촨즈 레노버 회장(66 · 사진).류 회장이 CEO(최고경영자) 복귀 1년 만에 새로운 신화쓰기에 나섰다. 중국 IT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그가 요즘 쥐고 있는 것은 레노버의 스마트폰 '러 폰'(Le phone).'타도 아이폰'을 외치며 지난 17일 중국 전역의 휴대폰 매장에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징 중관춘의 허름한 경비초소에서 1984년 창업한 뒤 20년 만에 IBM PC 사업부를 인수한 성공신화에 '애플 격퇴'로 새 장을 열겠다는 '나이든 청년'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됐다.

러 폰은 류 회장이나 레노버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레노버는 내 목숨과도 같다"며 작년 1월 경영위기에 빠진 레노버의 회장 자리에 복귀한 그가 먼저 결정한 것은 매각했던 휴대폰 사업부를 다시 인수하는 일.류 회장은 "PC와 휴대폰의 일체화란 흐름을 따라가려면 두 부문이 한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대폰 사업부를 다시 품안으로 끌어들인 뒤 그가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이 러 폰이다. 저가의 PC를 만들어 파는 한계로 인해 '지는 태양'으로 평가되던 레노버를 살리면서 자신의 성공신화를 이어가기 위한 승부수가 바로 러 폰인 셈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채용한 러 폰은 사실상 중국의 국가대표 IT(정보기술) 기기다. 차이나유니콤의 3세대(3G) 이동통신서비스(WCDMA)를 지원하고,중국의 대표 인터넷 업체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과 제휴해 연합전선도 만들었다. 앱 스토어는 200여개 중국 기업들이 함께 개발했으며 500여개 콘텐츠 업체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준비 중이다.

장쑤성 전장 출신인 류 회장은 산시성 시안의 군사전신공정학원(현 전자과학기술대학)을 졸업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는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후난성 해방농장으로 하방당했다가 1970년 베이징 중국과학기술원 산하 컴퓨터기술연구소로 복귀했다.

창업에 나선 건 1984년.약 7평의 경비초소에 10명의 컴퓨터 엔지니어를 모아놓고 회사를 차린 게 40세 때다. 창업자금은 중국과학원으로부터 지원받은 20만위안.한국과 대만 등지에서 부품을 들여와 PC를 조립생산하다 1990년 중국 최초로 286 컴퓨터를 자체 생산했다. 1994년에는 롄샹을 홍콩증시에 상장시켰고 1997년 이후 중국 PC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그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레노버는 2005년 IBM의 PC사업부를 인수,전 세계에 차이나 파워를 인식케 했다. 그러나 방만한 조직운영과 기술개발 부족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지난해 류 회장이 구원투수로 CEO 자리에 복귀했다. 창업한 뒤 은퇴했다가 복귀해 애플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스티브 잡스와 똑 같은 사업 역정을 걷고 있어 최근 '차이나 잡스'란 별명도 얻은 류 회장."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그의 새로운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