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김 과장.그의 책상에는 칫솔과 가그린이 비치돼 있다. 옷냄새를 가시게 하는 탈취제도 기본이다. 주머니에는 조그만 사탕도 준비돼 있다. 김 과장은 업무 특성상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이 찾으면 가장 먼저 입냄새를 제거한다. 수시로 탈취제를 옷에 뿌려 음식냄새도 없앤다.
이런 습관이 배인 김 과장은 한 입사동료를 만날 때마다 면박을 준다. 옷이나 입에서 담배냄새가 풀풀 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업파트가 아니라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김 과장의 생각이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카피가 있다.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에티켓이 한 사람을 '비호감'의 늪에 떨어뜨리거나 반대로 호감도 상승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거지근성'은 이제 그만!

대기업 글로벌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이모 대리(28)는 "백원만요~ 천원만요~"를 입에 달고 사는 후배의 '거지근성'에 질렸다. 이 대리 옆자리에 앉아 있는 후배는 싹싹한 행동과 말투만 보면 귀여움을 독차지할 것만 같은 유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후배는 '선배의 것은 나의 것'이라는 독특한 사유재산 개념의 소유자다. 선배의 핸드크림이나 립글로스 등 사소한 물품을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는 '블랙홀'이다. 자판기 앞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푼돈을 강탈하기까지 한다. 생글생글 웃으며 "선배,커피 마시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네요"라고 말하는 후배 앞에서 천원짜리 지폐 한 장 내주는 걸 망설였다가는 큰 코 다친다. '천하에 둘도 없는 쪼잔한 선배'란 뒷말을 듣는다. 순순히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계산이 깔끔한 성격인 이 대리는 팀장에게 후배의 행동을 우회적으로 고자질했다가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란 말을 듣고 좌절해 버리기도 했다. 이 대리는 "선후배 간 관계를 떠나 인간 사이의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한 후배들 때문에 직장생활이 짜증난다"고 말했다.

◆우리집이 부장님댁 옆동네라니요?

국내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모 부장(45)은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구걸하는 영혼'이 된다. 온화한 성격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김 부장은 업무시간엔 덕망 있는 상사 그 자체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부 직원들이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김 부장은 항상 "집이 어디냐","차는 가지고 왔냐"고 물어본다. 카풀을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목적지가 정반대 방향이라고 해도 일단 포획된 부하직원에게 "?C?C동이면 우리집이랑 같은 방향이네"라고 우기며 빙긋 웃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들은 있지도 않은 저녁 약속 자리를 만들어 핑계를 대는 일도 허다하다. 김 부장을 모시고 있는 이모 과장(33)은 "아무리 상사라고 해도 자기 집을 모든 부하들의 경유지로 만드는 '센스'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거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제발 청결의 기본만이라도 갖춰 주세요

직장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역겨움을 느낄 때는 입냄새가 심한 동료들과 얘기할 때다. 얘기할 맛이 싹 없어지지만 업무를 위해선 입냄새를 참아야만 한다.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강모 대리(34)는 상사인 이모 과장의 입냄새에 신경쇠약 직전까지 갔다. 이 과장이 입을 여는 순간 풍겨오는 강렬한 입냄새는 설령 그가 '백만불짜리 기획'을 했다고 해도 점수를 다 깎아 먹는 역할을 한다.

"입냄새만 빼면 나무랄 데 없는 상사지만 그 한 가지 단점이 이 과장을 팀내 혐오대상 1순위로 만들어 버렸다"는 게 강 대리의 설명이다. 강 대리는 "유난히 파를 좋아하는 이 과장은 삼겹살 회식 때 고기가 나오기 전에 파절임을 모두 먹어 치운다"며 "파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자신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IT(정보기술)업체에서 일하는 최모씨(29) 동료들은 모시고 있는 부장을 '방귀대장 뿡뿡이'라고 부른다. 방귀가 가끔 터져 나온다면 생리현상이라는 이유로 모른 척해 줄 수도 있다. 부장은 그러나 신호가 오면 살짝 한쪽 엉덩이를 들어 준비자세까지 취하는 독특한 습관을 갖고 있다. 팀원들을 호출해 야단치다가도 그 순간이 오면 준비자세를 취하고 큰 소리로 '발사'를 하는 통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지경에 처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소규모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윤모씨(30)는 옆자리 동료만 보면 '내가 깔끔한 사람'이라는걸 느낀다. 동료는 전신 가려움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한다. 툭하면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세밀하게 긁는다. 그러다가 손을 머리로 가져간다. 순식간에 그의 어깨에는 정체불명의 '하얀 눈'이 쌓인다. 윤씨는 "한참 여기저기 긁다가 자로 섬세하게 손톱 사이 때까지 빼내는 걸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눈치와 개념 탑재를 요망합니다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차모 대리(33)는 평소 10분,20분 지각을 일삼던 후배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게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직설적으로 야단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돌려 말하기로 했다. 후배가 기본적인 눈치를 '탑재'했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차 대리는 어느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을 고르는 후배에게 "늦었네,아침은 먹었어?"라고 물었다. 눈치없는 후배는 밝게 웃으며 "그럼요,저 아침에 엄마가 해준 국에 든든하게 밥 말아 먹고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알고보니 후배는 눈치가 없는 천성을 갖고 있어 우회적인 꾸중을 하나도 알아 듣지 못하는 유형으로 사내에 정평이 나 있었다. 차 대리는 "눈치가 없다보니 좋은 말로 혼낼 수 없어서,결국 큰 소리를 내며 강하게 꾸짖게 된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유모 대리(31)는 한 동료의 '오마이갓~','웁스~'란 소리만 들으면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동료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서 2년 거주했다는 이유로 사내에서 '해외파'를 자처하고 있다. 막상 영어로 업무를 진행해야 할 때에는 뒤로 쏙 빠져 버리지만 말이다. 순수 국내파인 유 대리보다 영어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데도 상사들 앞에서는 갓 귀국한 미국교포처럼 행동한다. 동료가 당황스러울 때마다 영어로 "웁스~","오마이갓~" 같은 영어 단어를 내뱉으면 더 얄미워진다. 유 대리는 "동료가 '웁스~ 웁스~'거릴 때마다 '엄마야!' 소리가 날 때까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이정호/김동윤/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