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수도 킨샤사의 최고급 그랜드호텔 칸사이홀.지난 3일 오전 네제다자 조아스 재무차관 등 25명의 정부 고위관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EDCF(대외경제협력자금 · 유상원조) 프레젠테이션을 듣기 위해서였다. 당초 2시간 정도 예상했던 행사는 점심을 넘겨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다. 재무관료들은 연거푸 질문을 쏟아냈고 현지 언론들의 취재경쟁도 가세했다. 수출입은행이 EDCF 지원을 확정하면 DR콩고는 사상 첫 유상원조를 받게 된다.

이날 행사 비용 5300달러는 모두 DR콩고 정부가 냈다. 월 100달러 안팎인 공무원 봉급도 제때 주지 못하는 열악한 재정을 감안하면 크게 한 턱 쓴 셈이다.

◆DR콩고 정부의 '코리아 태스크포스'

지난달 25일에는 킨샤사 중심가에 위치한 전통음식점 인지아에 태주종합철강 현대건설 코오롱 남광토건 농어촌공사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DR콩고의 실세 장관으로 꼽히는 광업부 장관,에너지부 장관이 정수장과 상하수도 사업에 참여 중인 한국 컨소시엄 관계자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이튿날 정식 미팅 때 피송고 길버트 에너지부 장관은 "중국보다 뛰어난 회사는 한국밖에 없다. 빨리 사업을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다.

광물자원이 풍부해 '아프리카의 칠레'로 불리는 DR콩고에서 한국 기업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한국 기업을 대하는 DR콩고 정부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현지 지사장이나 소장들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가 하면 장관들과도 수시로 접촉한다.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이후부터 달라진 풍경이다.

올해 40세인 카빌라 대통령은 국가 재건의 의지가 남다르다.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고 느낀 그는 귀국 후 즉시 장관들에게 '코리아 태스크포스'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비서실장이 팀장을 맡고 9개 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태스크포스는 한국 관련 프로젝트를 수시로 점검,2주마다 미팅을 열어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그 결과 한국 기업의 DR콩고 진출이 속도를 내고 있다. 대부분 자원과 인프라를 연계하는 '패키지 딜(package deal)'이다. 도로 상수도 댐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해 주고 그 대가로 광물을 받는 방식.재정이 빈약한 DR콩고는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고,한국은 부족한 광물자원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윈-윈전략'이다.

재건부의 아미도스 세레 인프라조정국장은 "중국 국영기업 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의 민간 기업들이 여기에서 고용 창출과 함께 재투자를 통해 성장의 기반을 창출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정수장 지어주고 구리광산 받는다.


킨샤사 저스티스 63번가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의 대사 집무실에는 한국과 DR콩고 간에 추진되는 네 가지 협력사업 진행 상황판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태주종합철강의 정수장 · 상하수도 · 댐 건설,동명기술공단의 간선도로 현대화 사업,국토해양부의 바나나항 개발,웨텍의 지리정보구축 사업 등이다. 김성철 대사는 "요즘 진도가 착착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세레 재건부 인프라조정국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7~8월 중 DR콩고를 방문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에 맞춰 두 정상이 프로젝트에 사인할 수 있도록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태주종합철강의 프로젝트는 카빌라 대통령이 지난달 방한했을 때 직접 조인식에 참여했을 정도로 DR콩고가 의욕을 보이는 사업이다. 총 사업 규모는 약 18억달러.태주는 1단계로 킨샤사 부근 렘바인보 지역에 정수장을 건설해 주고 잠비아와의 국경지역에 있는 27억달러 규모의 무소시 구리광산 채굴권을 받기로 했다.

설철희 태주종합철강 콩고지사장은 " 정수장 건설부터 먼저 착수하고 상하수도,소수력 댐 건설 순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태주는 상하수도 건설을 위해 현지 강관공장 설립도 추진한다.

태주 컨소시엄에는 삼천리(광산개발) 현대건설 · 코오롱건설(건설담당) 농어촌공사(소수력댐 설계 · 감리) 지오제니(광산컨설팅)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광물자원공사도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 중이다.


◆간선도로 현대화 사업

동명기술공단이 주도하는 '간선도로현대화 사업'도 최종 계약 막바지 단계다. 이 사업에는 한국도로공사 포스코건설 지오제니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다. 킨샤사와 제1 경제도시 루룸바시를 잇는 고속도로를 비롯해 총 연장 1만㎞의 도로를 건설하는 것.동명 측은 우선 1단계로 루룸바시 위쪽의 은구바와 음웨네디투를 잇는 767㎞(총 사업비 1조9000억원)부터 착수키로 했다.

이융희 동명기술공단 전무는 "구리광산을 개발해 투자자들에게 투자비를 돌려주고 나머지는 재투자함으로써 총 연장 1만㎞의 주간선도로망까지 구축하기로 DR콩고 측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지난 2월 카빌라 대통령이 직접 불러 연내 착공을 당부하며 도로 외에 신도시 개발,병원 학교 건립 등도 순차적으로 추진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한반도의 11배 크기인 DR콩고는 국토의 대부분이 내륙지역이지만 서쪽으로 40㎞ 정도 해안선을 끼고 있다. 그러나 수심이 얕아 큰 배가 접안하기 힘들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부의 대표적 항만도시인 바나나의 항구 수심을 깊게 만들기로 하는 작업을 추진,한국 국토해양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총 사업비 5억~6억달러 규모.국토부는 DR콩고가 제시한 구리광산의 경제성을 분석,그 결과를 갖고 컨소시엄에 참여할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한국 측량업체인 웨텍은 DR콩고의 디지털 지도 등 국가지리정보를 구축해 주고 광물을 받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킨샤사(DR콩고)=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