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월가의 간판인 골드만삭스를 파생금융상품 판매 사기혐의로 제소한지 꼭 한달이 됩니다.미 상원에서는 월가 대형은행들의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규제하자는 안이 쟁점입니다.월가와 대적한 주인공은 바로 ‘철혈 여인네들’입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가 골드만삭스를 제소한데는 여성인 메리 샤피로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습다.SEC는 골드만삭스가 금융위기를 앞두고 모기지(주택담보대출)와 연계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판매하면서 투자자들을 오도했다고 지난달 16일 제소했습니다.

당시 SEC의 정책결정 위원회 5명 위원 가운데 여당인 민주당 성향의 2명이 찬성하고 야당인 공화당 성향의 2명은 반대하는 상황이었습니다.팽팽한 균형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샤피로 위원장이 찬성쪽에 캐스팅보트를 던지면서 깨졌습니다.

월스트리저널(WSJ)은 월가 역사상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이번 제소 결과가 샤피로 위원장의 위원장직이 걸린 용기있는 판단이자,도박에 가까운 결정이라고 평가했습니다.통상 다섯명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하지 않으면 SEC가 섣불리 제소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고 합니다.

골드만삭스를 향한 샤피로 위원장의 강공은 SEC가 당한 굴욕을 씻어내기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됩니다.SEC는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이 500억달러 규모의 천문학적인 다단계 금융사기를 쳤지만 이를 적발하지 못한 탓에 부실 감독기관이라는 따가운 비난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메이도프 사건으로 SEC 직원들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샤피로 위원장은 이런 참에 골드만삭스에 칼날을 들이댄 것입니다.그는 골드만삭스를 조사하기 위해 인력을 보강하고 800만쪽의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승부수를 띄웠습니다.샤피로 위원장은 “금융사기에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SEC의 존재이유는 사라질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다졌습니다.

현재로선 샤피로 위원장이 우세한 형국입니다.제소 발표는 골드만삭스에 엄청한 충격파를 가했습니다.제소가 발표된 이후 골드만삭스 주가는 22% 하락해 싯가총액이 200억달러 이상 날아가버렸습니다.골드만삭스는 연방검찰로부터 형사조사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샤피로 위원장이 투자자들을 속인 골드만삭스에서 받아낼 수 있는 결정적인 항복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민사소송에서 이겨 벌금을 받아내는 게 최대 목표입니다.최소한 블랭크 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라도 사퇴시켜야 체면이 설 것으로 보입니다.

“법적이나 사실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발해 온 골드만삭스는 지난주부터 제소를 취하하기 위해 SEC와 화해 조정에 들어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습니다.또 골드만삭스는 복잡하게 구성된 파생상품이 고객들에게 적합한지를 따져보겠다면서 경영규범위원회 신설을 추진하고 있어 자성모드로 전환하는 모양새입니다.다만 브랭크페인 CEO는 사퇴할 의사가 없다고 줄곧 밝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상원의 파생금융상품 규제안을 발의한 브랑쉬 링컨 의원의 의지도 대단합니다.여성의원인 그는 금융감독개혁 법안에 규제안을 반드시 반영하겠다는 입장입니다.규제안은 대형은행들이 스왑 등의 파생금융상품 거래업무를 분사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파생금융상품이 금융위기를 심화시킨 주범이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규제안은 사면에서 공격당하고 있지만 링컨 의원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월가 대형은행들은 파생상품 규제안이 금융감독개혁 법안에 반영되지 않도록 로비를 벌이고 있습니다.골드만삭스 등 월가 5대 은행들은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약 90%를 차지합니다.스왑 파생상품 거래의 경우 이들 은행에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이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링컨 의원의 규제안을 가로막는 세력은 월가뿐 만이 아닙니다.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 다른 감독당국들조차 반대합니다.벤 버냉키 FRB 의장은 지난주 일부 상원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파생금융상품 업무가 분사되면 오히려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셰일라 베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링컨 의원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습니다.베어 의장은 “스왑거래는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는 수단이며,대형은행들은 스왑거래를 위한 시장조성 기능을 한다”고 규제안을 반대했습니다.대형금융사들의 무분별한 덩치 키우기와 자기자본거래 등 위험한 투자를 규제할 ‘볼커 룰(Volcke Rule)’를 제안한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장 역시 반대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민주당 소속인 링컨 의원은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습니다.당내 경선 경쟁자들은 링컨 의원이 월가 및 대기업과 안주하는 인물이라고 공격해 왔습니다.링컨 의원에 대한 지지율은 45%입니다.최대 경쟁자의 지지율인 37%보다 근소하게 앞서 있습니다.링컨 의원이 파생금융상품 규제안을 놓고 월가에 굴복한다면 재선될 전망이 밝지 못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