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1조엔(약 12조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교세라를 따라잡는 일만 남았습니다. "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65)이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77)에게 도전적으로 말을 건넨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싱긋 웃으며 이렇게 받는다. "우리 목표는 매출 2조엔이네.따라잡을 수 있으면 따라잡아 보게." 듣고 있던 호리바제작소의 호리바 마사오 최고고문, 옴론의 다테이시 요시오 회장 등이 파안대소하며 술잔을 권한다.

교토의 오너 경영자 친목 모임인 '쇼와카이(正和會)'의 한 장면이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을 좌장으로 20여명의 회원들이 매달 한 번 교토의 음식점에 모이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같은 지역의 오너 경영자들이 모여 사업 정보를 교환하고,서로 자극도 주고받는 모임"이라고 다테이시 회장은 설명했다.

인구 145만명의 지방 도시,교토에서 쟁쟁한 글로벌 챔피언 기업들이 줄줄이 탄생한 데는 그들만의 협력문화가 큰 밑거름이 됐다. 선배 기업이 후배 기업을 끌어 주고,대학과 지방자치단체가 기술과 정책으로 후원하는 끈끈한 네트워크가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교토엔 오래전부터 직물 도자기 양조 등 전통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클러스터(협력체계)가 형성돼 있었다. 그 전통이 현재의 교토 기업들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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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간 협력과 공생

1973년 창업한 일본전산은 사업 초기 자금난에 빠진 적이 있다. 이때 일본전산을 구해준 건 교토의 선배 기업들이었다. 옴론과 와코루 교토은행 등 교토경제동우회의 회원사가 1972년 만든 벤처캐피털 '교토엔터프라이즈 디벨롭먼트(KED)'가 일본전산에 500만엔을 지원했다. 당시 일본전산의 지원을 주도했던 옴론은 주력인 자동화 기기를 위해선 정밀모터를 개발하는 일본전산과 공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일본전산은 하드디스크 모터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당시 옴론이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전산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가모리 사장은 그때 받은 은혜를 교토의 후배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으로 보답하고 있다.

교토 기업끼리는 제품 발주나 자금 대여 등도 활발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칩 부품 업체인 무라타제작소의 오늘을 있게 만든 데는 시마즈제작소의 공이 컸다. 시마즈는 무라타의 창업 초기부터 제품을 집중 발주했다. 무라타는 시마즈에 최고 품질의 제품을 공급했다. 서로 세계 제일의 기술 기업으로 크는 데 힘을 보탠 것이다. 두 회사는 지금까지도 끈끈한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교토경제동우회 관계자는 "교토 기업 간 유대관계가 남다른 것은 도쿄지역 기업에 지지 말자는 공감대를 갖고 뭉친 게 큰 요인"이라며 "지역 기업 간 시너지 효과로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교토대는 기술 뒷받침

교토대 요시다캠퍼스의 벤처비즈니스랩(VBL)엔 장난감 같은 전기자동차들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건 대나무로 광주리처럼 엮은 차체의 전기차다. 교토대를 중심으로 개발 중인 미래형 전기자동차인 일명 '교토카(kyoto car)'다. 교토카는 철판이 아닌 대나무 차체,태양광 전기 연료,핑크색 벚꽃 디자인 외장 등이 특징이다.

친환경적 첨단 기술과 교토 문화를 접목시킨다는 컨셉트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차체를 대나무로 만들면 안전성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교토카 창안자인 마쓰시게 가즈미 교토대 교수의 대답은 교토 사람답다. "사람이 자동차에 부딪친다면 대나무 차가 더 안전하지 않겠나. " 교토카 프로젝트엔 지역의 혁신적 벤처기업 8곳이 참여하고 있다. 교토시도 이 프로젝트를 적극 후원하면서 산 · 학 · 관 연계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교토카 생산을 위해 설립된 대학벤처인 그린로드모터스의 고마 히로야스 사장(교토대 경영대 석사과정)은 "내년 중엔 교토카의 양산 모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토의 산업 클러스터에선 이처럼 대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토 지역의 대학들은 1995년 '교토 벤처비즈니스 연구소'를 설립해 지역 벤처기업에 특허와 창업 관련 상담을 해주고 있다. 산학 협력의 모범적 케이스다. 무라타제작소 호리바제작소 교세라 등 교토의 기업들은 대학이 필요로 하는 첨단 연구 장비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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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도 벤처 지원

지자체도 교토 산업 클러스터의 중요한 축이다. 교토시는 '교토시 벤처감정위원회'와 '교토기업가 학교'를 설립해 산업 클러스터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교토시 벤처감정위원회는 교토 클러스터의 핵심 기관이다. 교세라 일본전산 호리바제작소 등의 최고경영자(CEO)가 창업 희망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고,조언을 해주는 기구다.

이 과정을 거쳐 교토시 벤처감정위원회가 선발한 벤처기업에는 교토시가 창업 자금을 전폭 지원한다. 세계적 기업의 CEO가 제공하는 컨설팅 비용은 물론 무료다.

교토시의 민간 조직인 '간사이TLO(Technology Licensing Organization)'는 교토 지역 대학생들이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도록 기술거래 업무를 담당한다. 이 기관은 교토 지역 벤처기업이 대학의 기술을 사업화할 경우 기술 평가는 물론 마케팅까지 지원한다. 교토 기업의 경쟁력 뒤엔 교토만의 산업협력 클러스터가 꿈틀거리고 있다.

교토=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