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발명의 날'이다. 1442년(세종 24년) 5월19일 측우기를 처음 발명했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1957년 시작된 발명의 날 행사가 올해로 45회째다. 해마다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가 기념행사를 열지만,별로 열기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닷새 전 서울에서 측우기 세미나가 열렸다. 미국에 사는 내 친구가 14일 이메일을 보내,한국에서는 이제서야 실록을 읽었다는 말이냐고 힐난한 것은 이 행사 때문이다. 이 친구는 그 날자 한국의 인터넷 신문 기사를 첨부해 보냈는데,측우기 발명자는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실록에서 밝혀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 때문에 그 친구는 한국 학계가 이제서야 실록을 읽느냐고 따져 물은 것이다.

물론 한국 학자들이 이제서야 실록을 읽은 것도 아니고,측우기가 문종의 발명이란 사실이 지금 처음 알려진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나 자신이 이미 1년 전에도 바로 이 칼럼에서 측우기가 문종의 발명임을 밝힌 적이 있다. 당시 주제가 발명은 아니었지만,그 관련 부분은 이랬다. '측우기 발명자는 세종이 아니라 그의 큰 아들 이향(1414~1452년)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세자였던 그는 1450년 아버지 세종을 이어 조선 왕조 제5대 임금 문종으로 즉위하지만 2년 뒤 죽고 말았다. '(2009년 5월17일 다산칼럼)

측우기가 세종이나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의 발명이라는 사실은 이미 과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측우기를 주로 장영실의 발명이거니 지레 짐작해 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예 책 제목을 《장영실:측우기를 만든 조선 발명왕》이라 붙인 것도 보일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국 여러 곳에 건립된 장영실의 동상에는 어김없이 측우기가 함께 세워져 있다. 마치 장영실의 대표 발명이 측우기라는 듯….실정이 이렇고 보면 지난 14일 세미나에서 한번 더 측우기를 장영실의 발명이 아니라 문종의 발명이라고 강조했다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형국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급하게 살아오면서 많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성급하게 우리 문화를 잘못 규정하고 넘어간 일도 적지 않다. 우리 역사상의 자랑거리를 찾아 강조하다 보니 장영실이 세종 때의 온갖 발명을 모두 해낸 것처럼 과장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장영실의 동상에 함께 세워진 측우기의 받침대에는 유명한 측우대의 명문(銘文)도 그대로 새겨져 있다. '측우대: 건륭경인오월조'(測雨臺: 乾隆庚寅五月造)란 글자까지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 측우대는 영조 때인 1770년(경인년)에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 적혀있는 것인데,그걸 장영실 동상에 함께 새겨놓고 보니 괴이한 꼴이 되고 말았다. 1440년쯤의 장영실이 1770년의 측우기를 옆에 두고 서 있으니 볼썽사납지 않은가.

이제 우리도 점잖게 살아갈 만큼은 되고 있으니,우리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이런 일에서도 우리 국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3년 전 발명의 날 주제처럼,한국은 '세계 4위의 지식재산 강국'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영실을 지나치게 과장해 자랑하는 노력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장영실은 자동물시계 자격루와 옥루를 발명한 것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명가다. 더구나 그는 천민 출신으로 높은 관직을 얻기도 했던 당대의 대표적 성공자였다.

오늘 제45회 발명의 날에는 측우기의 발명자로 문종을 한번 생각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의 홈페이지에는 우리 발명의 역사를 정리해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발명 강국을 위해서는 역사적 뿌리도 살필 필요가 있지 않겠나.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