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외 총 수주목표 20조원 중 해외에서만 14조원 이상을 수주하겠다는 현대건설 김중겸 사장(60).그는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1년 중 한 달은 해외에서 산다. 현장 점검과 수주 협상을 위해서다. 몸도 마음도 지칠 법하지만 그는 오히려 해외 출장을 손꼽아 기다린다. 왜냐고 물었다.

"책을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국내에선 매일 일정이 너무 바쁘고 빠듯해서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해외 출장 기간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간(肝)의 휴식기죠.게다가 결재받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신문도 거의 안 보니까 책 읽기에 딱 좋지요. "

지금도 그는 30~31일의 베트남 출장을 기대하고 있다. 김 사장의 출장계획이 잡히면 회사 기획실에선 10여권의 추천도서를 가져다준다. 그러면 그 중 5권가량을 가져가 다 읽고 오거나 2~3권만 읽고 오기도 한다.

"지난 3월 초 싱가포르 · 스리랑카 · 베트남을 다녀오면서 《혼 · 창 · 통》(이지훈 지음,쌤앤파커스)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 책에 '리더는 what(무엇)을,매니저는 how(어떻게)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는데 참 적확하다 싶었어요. 매니저는 모든 게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할지 방법을 생각하지만 리더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김 사장은 좋은 구절이 나오면 바로 책장을 접는다. 좋은 구절이 위에 있으면 위를 접고 아래에 있으면 아래를 접는다. 이렇게 매달 3~5권씩 읽는 책에서 뽑은 내용을 수요일 아침마다 20~30명의 직원들과 갖는 'CEO 조찬간담회'나 직원조회 때 들려준다. 책을 선물하는 일도 많다.

"2007년 1월 30년 동안 몸 담았던 건설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으로 옮겼을 때였어요. 새로 맡은 조직 구성원들을 어떻게 끌고 갈까 고민하다 변화와 혁신을 먼저 이야기했죠.그러면서 긍정의 힘을 강조한 《시크릿》(살림비즈)을 직원들에게 선물했어요. 그러자 직원들과 만날 때 '《시크릿》 읽어봤느냐'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럽게 시작됐죠.그 다음엔 '다함께 비상하자'며 《윙》(원제 The Great Wing,포북》이라는 책을 선물했고요. "

김 사장은 이처럼 상황에 맞는 책을 찾아 아이디어를 얻고 돌파구를 마련한다. 품질 문제가 대두됐을 땐 《디테일의 힘》(왕중추 지음,올림)을 읽고 직원들과 디테일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지난해 9월 영국 · 이탈리아 · 프랑스 등 유럽 지역 12개 선진 기업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CEO 징기스칸》(왕중추 지음,올림)을 직원들에게 추천했다. 선진 기업과의 격차를 조속히 좁히려면 칭기즈칸처럼 수평사고에 기반한 속도경영이 필요하다는 뜻에서였다.

그는 특히 "CEO는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판단해야 한다"며 미래예측서를 필독서로 추천한다. 최근 현대건설이 2015년까지 '글로벌 톱 20'에 진입하겠다는 '비전 2015'를 만들 때에는 《글로벌 트렌드 2025》(미국 국가정보위원회 지음,예문)를 핵심 경영자들에게 나눠줬다. 세계적 인구 이동이 초래할 빈부격차와 대립 심화를 예측한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책과함께)을 읽고는 지난해 회사 내에 사회공헌팀을 만들었다.

김 사장은 평소 '공부하는 CEO'로 유명하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과 서울대 인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국립중앙박물관의 창조적 CEO 과정을 잇달아 수료했고,삼성경제연구소의 인문학 과정에서도 공부했다. 각종 조찬모임에도 부지런히 나가 공부한다. 특히 최근에는 인문학의 향기를 띤 건축이 필요하다며 '인문학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몰랐던 걸 새로 알기도 하지만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걸 구체화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특히 책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예요.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데 독서만큼 좋은 게 없거든요. 사람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도 다방면의 책을 읽는 게 최고의 방법이죠."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