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맞설 만한 리더십도,대규모 투자능력도,글로벌 시장을 품을 뜨거운 가슴도 없다. "

작년 11월 초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간판 전기전자 업체를 이같이 비판했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소니 등은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지난 11일 삼성그룹은 2020년까지 신수종산업인 친환경 및 바이오 분야에 총 2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틀 뒤 3월 말 결산법인인 소니는 2009회계연도 4분기(올 1~3월)에 구조조정 비용 등으로 5억4200만달러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전기전자 빅5의 두 배를 넘었다.

다른 업종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경제신문이 18일 우리투자증권에 의뢰해 1분기 실적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한국 대표 블루칩 기업들은 성장성 · 수익성 · 재무 안정성 등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 업체들을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익의 질이 다르다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시장 점유율 확대다. 삼성전자의 1분기 중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은 32.5%로 전 분기(30.9%) 대비 1.6%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일본 엘피다,대만 난야의 점유율은 전 분기 대비 각각 1.9%포인트,0.6%포인트 떨어졌다.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이 2.1%포인트 오르는 사이 도시바(-0.5%포인트) 마이크론테크놀로지(-1.1%포인트)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조선 분야도 글로벌 전체 신규 수주액 중 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체들이 수주한 비중은 51%로 중국(27%)을 압도했다. 작년의 경우 중국이 44%로 한국(40%)을 소폭 앞섰다.

자동차도 선전했다. 작년 4분기에 3.6%에 그쳤던 현대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올 1분기 4.4%로 올랐다. 반면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빅3'의 점유율은 33.8%로 전 분기 대비 1.7%포인트 떨어졌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의 점유율 역시 총 44.9%로 제자리 걸음을 했다.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해외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비용을 절감해 수익을 늘린 것 같다"며 "반면 한국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수익을 냈기 때문에 이익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훨씬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포스코 · LG화학 수익성 독보적

수익성 면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우위를 점했다. 포스코는 1분기에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1분기 매출은 60억달러로 아르셀로미탈(187억달러) 신일본제철(110억달러)에 못 미쳤지만 영업이익은 13억달러로 아르셀로미탈과 신일본제철(각 7억달러)을 크게 웃돌았다.

LG디스플레이는 영업이익률이 13.4%로 대만의 경쟁업체 AUO(7.2%)보다 높았다. LG화학은 영업이익률이 14.7%에 달해 미국 다우케미컬(5.1%),대만의 포모사플래스틱(9.8%)을 크게 앞질렀다. 김재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경쟁 업체가 석유화학 사업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LG화학은 고부가산업인 정보전자소재 부문을 꾸준히 키워 수익성을 크게 개선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의 1분기 영업이익률이 글로벌 경쟁 업체를 압도한 것은 기업의 펀더멘털 변화를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고태봉 IB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1분기 미국 기업들이 자동차 대당 평균 2600달러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동안 현대차는 1600달러 밖에 주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현대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YF쏘나타,투싼ix 등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신차가 투입된 영향도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시장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제고됐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투자로 격차 더 벌린다

글로벌 경쟁 기업에 대한 한국 대표 기업들의 비교 우위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다. 무엇보다 국내 대표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 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낮다. 작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부채비율은 62%로 난야테크놀로지(257%) 엘피다(217%) 등 여타 반도체 업체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포스코도 부채비율이 29%에 불과해 아르셀로미탈(95%) 신일본제철(114%)보다 훨씬 낮다. 이런 추세는 올 1분기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종우 HMC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채비율이 낮다는 것은 위기 대응능력이 뛰어나고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해 D램 반도체 부문에서 총 3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마이크론 엘피다 난야 등 3사의 설비 투자를 모두 합친 금액(19억달러)보다 많다. 포스코도 올해 아르셀로미탈(40억달러) US스틸(6억달러)을 크게 웃도는 6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김장열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원화가치가 갑자기 급등(환율 급락)하지 않는 한 해외 기업들이 국내 기업과의 격차를 좁히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