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의 여성 화장품 '오휘 루미아르떼 팩트' 케이스에는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달려 있다. 폴더형 휴대폰처럼 생겼고 케이스를 열고 닫을 때마다 눈꽃무늬 조명이 반짝거린다. 휴대폰처럼 충전도 할 수 있다. 2008년부터 한정판으로 나오는 이 제품은 매년 1만개의 한정품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온 LG그룹 '협의회 경영'의 파워를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오휘 루미아르떼 팩트'는 LG생활건강의 디자인에 LG전자의 기술을 녹여 만든 제품이다. 화장품에 정보기술(IT) 기기의 감성을 담아낸 게 성공 포인트로 꼽힌다. LG는 기술,디자인,특허 등 연구개발(R&D) 분야에서 계열사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 3대 협의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디자인에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라

18일 서울 양재동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는 이 가운데 하나인 디자인의 성과를 점검하는 경영간담회가 열렸다. 구본무 LG 회장은 이 자리에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사용자 경험 중심의 디자인 컨셉트'를 올해의 전략으로 제시했다.

구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스마트폰과 3D TV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새롭게 강조한 포인트는 '사용자 경험'이다.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보다는 쉽고 편리하고 즐겁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최고의 완성도를 향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으면서도 품격도 남다른 디자인을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의 삶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바탕으로 편안함과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디자인을 역설한 것이다.

LG의 디자인 컨셉트는 2006년 초콜릿폰,프라다폰 등으로 대표되는 '감성 디자인'에서 2008년 롤리팝폰,보더리스TV 등의 '고객 인사이트 디자인'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LG전자는 이날 간담회를 통해 사용하기 편리하면서도 정교한 디테일을 갖춘 휴대폰과 생활가전 제품을,LG하우시스는 주부들이 참여하는 주거공간 인테리어 제품을,LG생활건강은 연령대별로 사용방법을 차별화한 화장품 디자인을 각각 구현하기로 했다.

디자인협의회는 2006년 만들어졌다. 구 회장이 LG전자와 LG하우시스의 디자인센터를 방문했을 때 "LG하우시스의 표면소재 디자인이 뛰어난데 LG전자 가전제품 외관에 적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 시발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매년 5월 한 차례씩 계열사별 디자인 성과를 점검하고 방향을 설정한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는 LG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총집결했다. 강유식 LG 부회장,구본준 LG상사 부회장,남용 LG전자 부회장,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이상철 LG텔레콤 부회장,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협의회는 그룹의 또 다른 컨트롤타워

"필요한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계열사 간 기술 공유와 적극적인 공동 연구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시장을 선점해 나가야 한다. "

2000년 LG연구개발상 시상식에서 구 회장이 협의회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꺼낸 얘기다. LG그룹은 LG전자와 LG화학 양대 축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그룹의 외연을 확장하려면 두 회사가 갖춘 선진 역량을 다른 계열사로 전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를 위해 협의회 경영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 'LG기술협의회'를 만들었고 2006년에는 '디자인협의회'를,그리고 이달 초에는 해외 지식재산권 분쟁에 대비해 '특허협의회'를 출범시켰다.

기술협의회는 매년 초 성과가 뛰어난 연구개발 전략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통해 미래성장엔진 개발을 위한 전략 방향을 세운다. '차세대 성장엔진 분과위원회'를 별도로 운영하며 5~10년 후를 내다보는 연구개발 관리까지 맡는다. 구 회장은 1995년 회장 취임 이후 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테크놀로지를 통한 성장에 관심을 보여왔다.

특허협의회는 글로벌 특허 전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발광다이오드(LED),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같은 신사업 분야에서 계열사 간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280여명 수준인 특허 전문 인력을 2012년까지 370여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계열사간 시너지 창출을 통해 지속성장을 강조해온 구 회장의 경영철학을 잘 보여주는 게 3대 협의회"라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