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ART] 인간 굴레 깨부순 조각 혁명…거장 무어의 휴머니즘
영국 런던의 템스 강변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 국립미술관.영국이 낳은 위대한 조각가 헨리 무어(1898~1986년)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이곳에는 요즘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느릅나무로 만들어진 6개의 거대한 목조각이 전시장 입구를 메우고,맞은편에는 아프리카 조각과 원시주의 ·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시대별로 놓여 있다. 무어의 초창기 조각 드로잉 작업,모자(母子) 초상,'누워있는 여인'도 눈에 띈다. 크고 작은 조각들이 미술관 1층의 기획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헨리 무어는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작품으로 20세기 추상조각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8월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회고전에는 시기별 대표작들이 망라돼 있다. 1920~1960년대에 제작된 오리지널 조각,드로잉 등을 150여점이나 선보이고 있다. 한 사람의 조각가를 주제로 한 전시회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특히 '앉아 있는 형상''젖을 빨고 있는 아이''느릅나무' 등 미술사에 빛나는 작품들이 다 모였다.

전시장은 '세계 문화'를 비롯해 '어머니와 아이''모더니즘'(사진)'전쟁 시기''전쟁 이후''느릅나무' 등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세계 문화'를 주제로 한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1920년대 초기작을 만날 수 있다. 무어가 아프리카 조각과 원시주의,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들이다. 브랑쿠시를 비롯해 고디에 브르제스카,엡스타인 등 선배 예술가들처럼 무어 역시 아카데믹한 전통 방식의 조각을 거부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두 번째 섹션의 테마는 '어머니와 아이'다. 어머니와 아이야말로 태초의 시간으로부터 무한하고 보편적인 주제라고 여겼던 그는 특히 북아메리카의 모자상에 관심을 가졌다. 1930년 작 '젖을 빨고 있는 아이' 등 인간미 넘치는 모자 조각이 눈길을 끈다.

1930년대 유행했던 초현실주의와 모더니즘의 변화를 수용한 작품을 모은 세 번째 전시장에서는 '드러누운 형상' 등 그가 평생 동안 천착했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 로버트 멜빌은 이 당시의 작품을 "거대한 관능성과 냉정하고 절제된 생각이 모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존재와 지식 사이의 충돌이 용해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모어의 드로잉 작품은 네 번째 섹션 '전쟁 시기'에 걸려 있다. 그는 2차대전 때 종군화가로 활동했다. 당시 피난처로 운영되던 지하철 역사의 모습을 그렸는데,사람들이 어렵게 잠을 청하는 모습이나 정경을 검은색 배경에 흰색 필치로 거칠게 묘사했다. 단순하지만 묘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감상자의 발을 멈추게 한다. 전쟁에 대한 그의 기억은 이후의 작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대표작들은 '전쟁 이후' 섹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 이후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건드리는 여러 작품들과 1939년부터 제작했던 '헬멧' 시리즈가 부활했다. '앉아있는 여인''내부-외부 형태'도 나와 있다. 모두 현대 추상 조각의 대가임을 느낄 수 있는 수작들이다.

이번 전시는 전쟁의 상처,정신분석학의 출현,섹슈얼리티라는 당시의 새로운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원시주의 미술과 초현실주의 영향 등 작가 주변을 둘러싼 역사와 사회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영국의 시티 지역에는 크리스토퍼 렌이 건축한 '세인트 폴(성바오로) 성당'이 있다. 이곳에는 영국이 낳은 위대한 인물의 무덤이 조성돼 있는데,헨리 무어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그를 영국이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새로운 형상에 대한 고민과 창조를 이뤄낸 조각가로도 위대하지만 작품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휴머니즘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더욱 '위대한' 예술가였다.

런던=류동현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