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 활동하며 주목받아온 중견 미술가들이 잇달아 돌아왔다.

지난달 재미 화가 강익중씨(46)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재미 화가 최동열씨(59)와 임충섭씨(70),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작업해온 이상효씨(55) 등이 연이어 작품전을 열고 있다.

이국 땅에서 느낀 점을 동양적인 감성으로 녹여낸 신작들을 통해 작품 영역과 활동 무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한국 전통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작가들이다.

서울 강남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인전(31일까지)을 갖고 있는 최동열씨는 자연과 도시 문명의 접점,동양과 서양 문화의 경계를 깊숙하게 짚어낸다. 1970년대 초 22세에 미국으로 떠난 최씨는 1977년 화가 아내 로렌스를 만나면서 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태권도 사범,막노동자,바텐더 등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며 그림을 배운 그는 꽃이나 누드,빌딩을 소재로 삼아 동양적 미감과 향토적 정감을 풀어낸다.

둥그런 밥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 정물은 개성 출신인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이다. '풍경' 시리즈에서는 창 안쪽(한국)과 창 밖(미국)을 조화롭게 병치시켜 문화의 이중성을 표현했다.

재미 화가 임충섭씨는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73년 뉴욕으로 이주한 작가. 오는 3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는 고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평면과 조각,설치를 넘나들며 한국적인 전통에 천착해왔다.

신작 '월인천강'은 다듬이질 소리와 소몰이 소리,늑대의 울음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전시장 벽에 찼다가 이지러지는 달의 모습이 투사되면 물고기 네 마리가 헤엄치는 인공 연못 위로 달의 이미지가 다시 반사되는 작품이다. 명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은 퇴계 이황의 철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깨달을 각(覺) 8폭 병풍'은 불교의 깨달음을 전통 병풍 형태로 추상화한 작품이다. 명주실을 활용한 '오름 · 내림'은 한국의 전통 베짜기를 연상시킨다.

유럽 화단에서 활동한 추상화가 이상효씨도 동양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럽에서도 '동양적인 정신성을 서구 조형의 틀에 매력적으로 녹여낸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껏 해온 그의 작업들은 '줄임'과 '여백'으로 압축된다. 농부가 땅을 일구는 과정을 화면에 담아낸다는 그는 동양적인 진성(眞性)을 얻기 위해 가장 깊은 차원인 내적 심연으로 들어가 자신의 내면을 탐사한다.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24일까지 열리는 이씨의 개인전에는 신작 40여점이 걸렸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겪고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견 작가들은 익숙하지만 낯설고 두려운 전통에서 작품 코드를 잡아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