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세종시를 입지로 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구축 종합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다. 설상가상으로 천안함 사건과 6 · 2 지방선거 열풍에 묻혀 요즘엔 아예 그 존재 자체가 감쪽같이 실종되고 만 듯한 느낌이다.

"세종시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 논의한다"고 밝힌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의 최근 언급을 접하니 다시 한 번 과학기술계는,특히 기초과학계는 영문도 모른 채 문제의 뒤처리나 감당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가뜩이나 인재들을 이공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치 우리 사회의 이공계 홀대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더욱 많이 과학기술 분야에 진출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격이다. 몇 십년 뒤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선진국들은 실리적으로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는 처지에서 과학기술계에 꼭 필요한 사업이고 미래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업인 과학벨트 종합계획을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업만큼은 가장 비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정치권과 정부가 정치와 별개로 국가의 미래와 과학기술계를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만일 세종시 문제가 계속 표류하게 되는 경우엔 과학벨트 사업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 지역 공모 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과학벨트 내에 설치될 계획인 '세종국제과학원'도 비정치적으로,국가 기초과학만을 생각하고 세워야 한다.

과학기술의 진보를 뒷받침하는 것은 탄탄한 기초과학이다. 실제로 G20를 넘어 세계 주요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노벨과학상 수상을 가능케 하는 기초과학 수준이 담보돼야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기초과학보다는 단기적인 성과를 보였던 응용과학 및 기술의 육성에 힘을 쏟았으며,이것이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현재의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국가전략이 이제 한계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기초과학 강국이 되려면 장기간의 국가적 지원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실제로 모든 과학강국은 국가적으로 기초과학 연구 분야를 집중 지원,육성하고 있다.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의 캐번디시 연구소,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프랑스의 국립과학연구센터,일본의 이화학연구소,미국의 유수한 국립연구소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국격'이라는 화두가 회자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국가 연구기관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슷한 취지로 설립된 모든 출연연구소는 기초과학보다는 공학 및 융복합을 포함한 응용 관련 연구가 중심이 되어 있다. 과학벨트내 세워질 세종국제과학원은 국가 도약에 필수적인 기초과학 중심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자리잡을 수 있음을 알리는 기회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1년여나 늦어지면서 사업 1단계 예산조차 2010년 국가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당장 과학벨트의 핵심 사업인 세종국제과학원의 준공 시기부터 연기되고 있다. 우선 특별법부터 조속히 통과시켜 정치 싸움에 기초과학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또 하나 강조할 것은 과학벨트의 신속한 사업 추진에 있어 과학계 의견이 더욱 존중되기를 바란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사전 준비 작업과 각계 각층의 보다 큰 지지를 끌어내는 노력,그리고 사업예산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이영백 한양대 교수·물리학 / 한국물리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