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추진 중인 '개혁'은 못생긴 얼굴을 잠시 가리는 '화장술' 같은 기만책에 불과하다. 위기를 막을 방법은 없고 결국 경제대공황이 올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유럽의 재정적자 위기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윌버 로스 WL로스 회장)

그리스발 재정적자 위기가 남유럽 각국으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유럽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자 파국을 예고하는 '카산드라'(그리스신화의 여자 예언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500억유로의 유로존 재정안정대책은 시장에서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고,유로화는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면서 한때 극단적인 비관론 정도로 치부되던 '유로화 퇴출론'은 '암울한 예언'처럼 시장을 휘젓고 있다.

◆"세계대공황의 언저리에 와있어"

'닥터 둠' 루비니 교수는 18일 BBC방송 인터뷰에서 "그리스 재정위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위기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는 의견을 밝혔다. 루비니 교수는 "과연 유로존이 긴축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건강상태라도 유지하고 있는지 우려가 크다"며 "1933년 경제대공황이 결국 (2차 세계대전 등) 새로운 위기의 등장으로 끝맺었던 것처럼 세계는 지금 대공황의 언저리에 와있다"고 경고했다.

또 스페인에서 디플레이션 공포가 불거진 상황에서 18일 영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3.7%로 17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해 유럽경제의 향방에 대한 예측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로존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도래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적인 인수 · 합병 전문가인 윌버 로스 WL로스 회장은 "유럽 각국의 긴축정책과 성장둔화가 겹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시대로 향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재정적자 위기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에 모두 타격을 입히면서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공존하는 최악의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리스 경제의 파산은 불가피할 것이란 '작은 비관론'도 잇달아 나온다. 울리히 카터 데카방크 수석연구원은 "그리스는 외채상환을 위한 이자비용을 제외한 재정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는 돼야 부채상환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그리스의 긴축조치와 낮은 산업경쟁력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토머스 마이어 도이체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유럽중앙은행(ECB)이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 문제국가의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결국 ECB만 배드뱅크로 만드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로화 사형선고 내려졌나

유로화가 초약세를 이어가면서 유로화의 미래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전문가들도 늘고 있다. 19일 유로당 달러 환율은 1.22달러대가 붕괴되면서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윈 틴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 투자전략가는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면서 유로화 가치는 조만간 1.18달러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UBS도 '1유로=1.10달러' 수준까지 주저앉을 것으로 전망했고 장기적으로는 유로화 가치가 달러와 같거나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제레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재정이 통일돼 있지도 않고 노동의 이동도 제한된 비대한 유로존은 단일화폐를 사용하면서 고통받고 있지만 평가절하 등 처방도 불가능한 상태"라며 "유로화 가치의 대폭락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앞서 "그리스가 구제돼도 유로화 미래는 불투명하다"(조지 소로스)는 주장이나 "앞으로 15~20년 뒤 유로화가 쪼개질 것"(짐 로저스)이라는 극단적 예측에 한발 더 다가선 상황이다.

한때 터부시됐던 유로존을 독일 · 네덜란드 등 건실한 '메이저 리그'와 스페인 · 포르투갈 등 부실한 '마이너 리그'로 나눠 환율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일반론적인 얘기가 될 정도로 유로화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