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를 사기 위해 외국 배급사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이라면서요. 벌써 프랑스와 이탈리아 호주 등 10개국에 팔았습니다. 큰 시장인 미국과 일본 배급업자들도 구매 경쟁을 펼칩니다. 12년 영화 세일즈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에요. 제가 만든 영화여서 더 각별합니다. "

칸국제영화제 마켓에서 만난 '하녀'의 제작자 채희승 미로비젼 대표(36 · 사진)의 말이다.

영화 세일즈로 출발해 제작까지 손댄 그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국 제작자 중 가장 젊다. '하녀'는 칸영화제 공식 시사회 하루 전날인 지난 13일 국내에서 개봉돼 6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흥행 실적이 구매 열기에 불을 붙인 셈이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영화인의) 꿈을 이룬 거라고.그런데 칸 공식 시사회에서 레드카펫을 밟고 단하를 내려다봤을 때 한순간 허탈하더군요. 그동안 단상을 올려다 볼 때 그토록 웅장해 보이던 느낌과 사뭇 달랐거든요. 그때 분명히 알았습니다. 칸영화제가 제 인생의 디딤돌이 될지언정 목표는 아니라고요. 항상 새로운 욕심이 생기니까,꿈이란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도요. "

그는 무엇보다 국내 흥행에 성공한 게 기쁘다고 했다.

비평가가 외면한 제작자는 살아남을 수 있어도,관객이 외면한 작품의 제작자는 재기하기 어렵다는 것.

"초반에 관객이 대거 몰린 것은 극장에 오지 않던 중장년층이 움직였다는 증거입니다. 오랜만에 섹시하면서도 품격있는 영화라고 생각한 거지요. 관객들은 그저 야하다고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에로틱한 설정에다 칸영화제가 품격을 얹어줬어요. "

고 김기영 감독의 동명 영화를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한 '하녀'는 부잣집 하녀가 주인 남자와 몸을 섞으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전 세계인들이 궁금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얘기지요. 하녀는 모든 나라에 있으니까요. 전도연과 이정재 윤여정 등 출연진의 연기가 뛰어나고 볼거리도 풍부합니다. 이 영화 속의 집만큼 럭셔리한 집을 찾기는 어려워요. 그게 관객들의 판타지를 자극합니다. "

고 김 감독과 채 대표의 인연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 한 영화전문지 객원기자로 일하면서 처음 만났고 1998년 작고 이후에도 유족과 친분을 쌓았다. 그는 "처음에는 유족들의 뜻대로 고인의 유작 시나리오를 제작하려 했지만 현직 감독들이 고사하는 바람에 실패했다"며 "2008년 고인의 아들과 '하녀'를 리메이크하기로 계약한 뒤 우여곡절 끝에 임 감독을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8년 영화 세일즈 회사인 미로비젼을 설립,한국 영화 '남극일기'(2004년)와 '강적'(2006년) 등을 제작했고 미국과 일본에서 현지 인력을 기용해 '샘스레이크'와 '로프트' 등을 만들었다.

"올 10월에는 '하녀'만큼 중요한 프로젝트를 또 하나 시작합니다. 안병기 감독의 공포영화 '폰'을 한 · 미 합작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는 거죠.안 감독이 연출하고 할리우드 흥행 영화 '트와일라잇'의 제작팀이 참여할 예정이어서 기대해 볼 만합니다. "

칸(프랑스)=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