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의 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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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다.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 흥행하기 시작한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중 패션,음악 등 분야에서 재능있는 차세대 스타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버라이어티 쇼와 같은 오락 프로그램들이 리얼리티를 표방하고 나서기 시작했는데 최근 2~3년 사이 대중의 인기를 끈 프로그램 중에는 공동체,도시 외곽에서의 체험활동에 초점을 맞춘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프로그램을 보고 삼천리 금수강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을 사회적 맥락에서 생각해보면,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도시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프로그램들이 잊고 있던 자연의 풍요로움을 상기시켜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도시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자연의 모습을 TV를 통해 접하겠지만,나와 같은 세대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옛 시절 자연에 대한 유토피아를 하나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서울 종로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지만,어머니가 수원에서 과수원을 가꾸셨던 덕분에 농촌 아이들 못지않은 자연체험을 할 수 있었다. 과수원은 아버지께서 벌어오시는 적은 월급을 아끼고 아껴 어머니가 만드신 당신만의 꿈의 궁전이었다. 겨울에서 초봄이면 딸기가,여름에서 초가을이면 포도가 열리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과수원에는 사과나무,밤나무 등 각종 과일 나무가 자라 재배와 수확의 기쁨을 고스란히 안겨줬다.
여름방학 때 온 가족이 과수원에 내려가면 아침에 일어나 토끼에게 먹일 풀을 뜯고,피었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는 나팔꽃을 입으로 불어보기도 하고,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아기 열매를 호기심에 먹어보기도 했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이며 냇가의 미꾸라지며,원두막에 모기장을 치고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내 눈앞에 있었다.
어머니의 과수원은 나와 형제들이 커가면서 늘어가는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결국 처분됐지만,그나마 그러한 시절을 가질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라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올챙이 다리가 앞다리부터 나오는지 뒷다리부터 나오는지,개나리는 꽃이 먼저 피는지 잎이 먼저 나는지,예전엔 책에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인데,요즘 아이들은 영어 단어는 잘 알아도 길가에 심어진 가로수나 들풀 이름은 제대로 못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도시의 위압에 질려 귀농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 세대야 몸소 체험한 것이 있어 도시에서 살다가도 시골이 좋으면 농촌생활을 할 수 있다지만,자연과 더불어 사는 풍요로움을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겐 그런 선택의 기회마저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이 살면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깨달음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세대가 미래에 최첨단 디지털 사회에서 녹색혁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그 당위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황수 GE코리아 대표 soo.hwang@ge.com
재미있는 것은 이들 프로그램을 보고 삼천리 금수강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을 사회적 맥락에서 생각해보면,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도시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프로그램들이 잊고 있던 자연의 풍요로움을 상기시켜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도시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자연의 모습을 TV를 통해 접하겠지만,나와 같은 세대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옛 시절 자연에 대한 유토피아를 하나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서울 종로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지만,어머니가 수원에서 과수원을 가꾸셨던 덕분에 농촌 아이들 못지않은 자연체험을 할 수 있었다. 과수원은 아버지께서 벌어오시는 적은 월급을 아끼고 아껴 어머니가 만드신 당신만의 꿈의 궁전이었다. 겨울에서 초봄이면 딸기가,여름에서 초가을이면 포도가 열리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과수원에는 사과나무,밤나무 등 각종 과일 나무가 자라 재배와 수확의 기쁨을 고스란히 안겨줬다.
여름방학 때 온 가족이 과수원에 내려가면 아침에 일어나 토끼에게 먹일 풀을 뜯고,피었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는 나팔꽃을 입으로 불어보기도 하고,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아기 열매를 호기심에 먹어보기도 했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이며 냇가의 미꾸라지며,원두막에 모기장을 치고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내 눈앞에 있었다.
어머니의 과수원은 나와 형제들이 커가면서 늘어가는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결국 처분됐지만,그나마 그러한 시절을 가질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라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올챙이 다리가 앞다리부터 나오는지 뒷다리부터 나오는지,개나리는 꽃이 먼저 피는지 잎이 먼저 나는지,예전엔 책에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인데,요즘 아이들은 영어 단어는 잘 알아도 길가에 심어진 가로수나 들풀 이름은 제대로 못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도시의 위압에 질려 귀농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 세대야 몸소 체험한 것이 있어 도시에서 살다가도 시골이 좋으면 농촌생활을 할 수 있다지만,자연과 더불어 사는 풍요로움을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겐 그런 선택의 기회마저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이 살면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깨달음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세대가 미래에 최첨단 디지털 사회에서 녹색혁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그 당위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황수 GE코리아 대표 soo.hwang@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