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설거지를 하며 말했다. "애 좀 봐요. " 칭얼대는 애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행주가 날아왔다. 아내가 빨래를 널며 말했다. "방 좀 훔쳐요. " "훔치는 건 나쁘지" 했다가 빨래통에 맞을 뻔했다. 아내가 애를 재우며 말했다. "분유 좀 타요. " 분유통을 타고 이랴이랴 하다 꼬집혔다.

우스갯소리지만 실은 남편의 양육 및 가사에 대한 무심함을 비꼬는 얘기다. 한국 남성의 맞벌이 선호도는 2006년 65.3%에서 지난해 81.5%로 늘었다. 취업 못한 여성은 결혼도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셈이다. 그런데 정작 결혼하고 나면 상황은 싹 달라진다.

통계를 보면 똑같이 바깥일을 하는데도 주말과 휴일, 남편은 주로 TV나 비디오(DVD)를 보며 노는(34.6%) 반면 아내는 밀린 집안일(31.9%)에 시달린다. 남편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평균 24분,부인은 2시간38분이고,집안일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가정은 10쌍 중 1쌍도 안된다.

남편의 거짓말 1위는 '일찍 들어갈게'(65%,이지데이)란 발표도 있다. 이러니 '결혼에 대한 인식 조사' 중 '다시 결혼한다면 지금 배우자와 하겠냐'는 물음에 남성은 46.9%,여성은 71.9%가 '아니오'라고 답할 수밖에(KBS방송문화연구소).

통계청이 부부의 날(5월21일)을 맞아 발표한 '우리나라 부부의 자화상'도 다르지 않다. '아내에게 만족한다'는 남편은 70.6%인데 남편에게 만족한다'는 부인은 60.8%에 불과했다. 나이들수록 상대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도 같았다.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이혼율이 99년 13.5%에서 지난해 22.8%로 높아지고,이혼 사유 또한 성격 차이(46.6%)가 경제문제(14.4%)를 훨씬 앞서는 게 죄다 이유있는 현상이란 얘기다.

아내들은 말한다. "남편과 아빠가 꼭 필요하던 시절엔 밖으로 돌다 아이들과 집안일에서 놓여날 즈음 돌아와 이것저것 참견한다. " 은퇴한 뒤 하루 세 끼 식사를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영식님(세 끼 모두 밖에서 해결) 이식씨(두 끼) 등으로 호칭이 바뀐다는 유머의 근거다.

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 남이 된다고 부부란 가깝고도 먼 사이다. 협력과 존중 없이 유지될 수 없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다. "미안하다,잘못했다"는 말없이 어물쩍 지나간 싸움 뒤 아내의 가슴엔 아물기 힘든 상처가 남는다. 상처는 덧나기 쉽고 그러다 보면 결국 곪고 터진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