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벅셔 해서웨이의 회장인 워런 버핏은 BYD라는 생소한 이름의 중국 기업에 2억3000만달러의 거금을 투자했다. BYD는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5년 설립된 이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현재 휴대용 배터리 시장 세계 1위,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세계 2위에 오른 기업이다. 근래에는 전기자동차 사업에 진출해 시제품을 출시하고,북미시장에서 GM의 전기차인 '시보레 볼트'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세계 자동차업계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2006년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기업 BCG는 BYD같이 신흥시장에서 출현해 빠르게 성장하는 100개 기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약 37%로 '포천 500대 기업'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그렇다면 신흥시장의 기업들은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들 기업은 향후 세계경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세 파트너는 약 5년 동안 신흥시장에서 출현한 대표적인 기업들의 성장과정을 추적하고 수많은 경영자와 인터뷰했다.

《글로벌리티》는 이들이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담아 2008년에 출간,세계적인 반향을 얻은 책이다. 한국어판 번역서는 '모든 곳에서,모든 것을 건,모두와의 경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저자들은 신흥시장의 기업들이 오랫동안 서구 선진기업들이 주도하던 세계 경제 질서에 쓰나미와 같은 변화를 일으킴과 동시에 새로운 경쟁의 룰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말하는 '글로벌리티'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세계성(世界性)'쯤 되는 개념으로 기존의 '세계화(Globalization)'와는 구별된다. 저자들에 따르면 '세계화'가 국가 간의 장벽이 사라지고 자원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장통합의 의미라면 '글로벌리티'는 신흥시장의 기업들이 촉발하는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다. 이는 세계 모든 곳에서 인력,고객,자원을 놓고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1950년대 이후 서구의 선진기업들은 비용 우위를 찾아 저개발국에 활발하게 진출했다. 이들은 당시 브랜드,기술,자본,경영관리,글로벌 네트워크 측면에서 저개발국 기업보다 우위에 있었고,저개발국의 기업들은 오랫동안 이들의 하청업체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 제조회사들이 선진기업의 하청업체를 벗어나 고품질,저가격 제품들을 앞세워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멕시코 기업들,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기업들이,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인도,브라질에서 출현한 기업들이 세계시장의 전면에 등장했다.

저자들은 신흥시장 기업들의 성장 요인으로 성장의 열정으로 가득 찬 경영자와 종업원,차별화되고 혁신적인 전략,원가 경쟁력,과감한 M&A 등을 들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강점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연구개발과 생산 분야에 비용우위를 유지함으로써 가격 대비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신흥시장 기업들이 촉발한 글로벌리티 시대에 기업들은 어떻게 생존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글로벌리티 패러다임의 시대에는 7가지 생존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효율성 제고와 혁신,성장에 필요한 전문인력 확보,조직과 비즈니스모델 최적화,중국 · 인도 등 수십억 소비자 선점,대담한 목표와 공격적 전략,현지화,세계시장의 문화적 · 지역적 다양성 수용 등이다.

필자는 이들 7가지 전략 모두 타당하지만 특히 미래 소비자들을 선점해야 한다는 전략이 기업들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현재 고객도 중요하지만 미래 고객이 될 신흥시장의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의 제품과 서비스를,어떤 가격으로,어떻게 제공할 것인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한국기업들은 신흥시장 기업들이 촉발한 새로운 경영환경 변화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이들의 성장전략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대응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에 새로운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남유현 SK경영경제연구소 경영인프라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