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성공한 트루먼, 실패한 부시…경제력 사용법이 갈랐다
"마키아벨리의 시대와 오늘날을 비교해볼 때 권력의 본질과 속성은 변한 것이 없다.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압력과 강요,당근과 채찍이다. 이성,가치,이해,리더십 같은 단어를 권력과 동의어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권력이 곧 무력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

1995년 보스니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평화협정을 이끈 분쟁해결사로 유명한 미국의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 · 파키스탄 특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권력의 속성은 그대로지만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과 수단은 달라졌다는 얘기다.

《권력의 탄생》을 쓴 레슬리 겔브 미국 외교협회 명예회장의 생각도 이와 같다. 민족국가의 탄생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국제권력은 단순했다.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위협과 실제 무력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국제권력이었고 군사적 우위는 그 자체로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50여년간 상황은 달라졌다. 그 사이에 탄생한 수많은 민족국가 중 대다수는 강대국의 지배에 저항할 정치적 의지와 새로운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통신네트워크는 세계 시민들에게 강대국의 음모를 알리고 선동하는 효과를 낳았고,전례없이 증가한 국제교역은 공동의 이익을 중시하고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에 제재를 가하는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이 때문에 강대국들은 적대국과의 의견 차이를 전쟁으로 해결하던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전면전을 피하기 시작했다. 강대국에 저항하는 약소국의 권력은 커진 반면 강대국에 대해서는 수많은 국제적 제재 조치가 생겨났다. 군사력의 효용은 떨어진 반면 권력의 도구이자 권력을 제재하는 도구로서 경제력이 갖는 중요성은 커졌다.

따라서 저자는 "새로운 권력 패턴과 군사력 · 경제력의 근본적인 변화는 권력의 사용을 제한하고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외교정책의 승리와 실책을 예로 든다. 그러면서 시대변화에 걸맞은 권력사용법을 제시한다. 조시 부시 전 대통령의 무모한 아프가니스탄,이라크 공격이나 북한과 이란에 대한 핵 개발 중단 협박과 후퇴의 반복은 실패 사례로,미국이 우월한 경제력을 이용해 독일과 일본의 경제를 회복시키고 국제기구를 창설해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수십년 뒤 소련을 자멸로 이끌어낸 트루먼 대통령은 성공 사례로 꼽혔다.

저자는 "권력은 권력일 뿐 강하거나 부드럽지도 않고,영리하거나 멍청하지도 않다. 오직 대통령만이 강하거나 부드러울 수 있고,영리하거나 멍청할 수 있다"며 전략 · 정보와 권력의 관계,군사권력과 경제권력,'부드러운 권력'인 '밑거름 권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특히 그는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세계의 권력구조는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고,미국이 홀로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면서도 국가들 간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미국은 다른 국가들을,다른 국가들은 미국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오늘날의 권력은 군사폭풍에 맞서는 것이라기보다 경제 및 외교 조류를 타는 것이어서 권력의 효과가 전보다 느리게 나타나므로 주요 국가들이 새로운 권력 형태를 이해하고 이러한 권력이 효과를 낼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을 갖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말하는 권력은 국내 권력보다는 국제사회에서의 권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미국의 이익을 위한 권력 사용법을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슬리는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냉정한 질서를 이해하고 '리더' 격인 미국의 전략을 이해하는 길잡이로서는 유용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