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만부 이상 팔린 히트작 《엄마를 부탁해》 이후 신경숙씨가 내놓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문학동네 펴냄)는 뜻밖에도 젊은이들을 향한 연서(戀書)다. 신씨는 지난해 하반기 한 인터넷 서점에서 6개월간 연재한 소설을 수차례 고쳐 일곱 번째 장편소설로 내놓았다.

소설은 8년 만에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며 시작된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켰던 대학시절 은사인 윤 교수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다가섰던 시절,그리고 아파하며 떠나보냈던 때로 돌아간다.

대학에 입학해 첫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죽은 나,화가 지망생으로 군대에서 죽음을 맞는 고향 친구 단이,사진과 문학을 좋아하는 갈색노트의 주인공 명서와 불행한 가족사를 지닌 채 화상으로 인해 쭈글쭈글한 손을 가진 명서의 친구 미루.작가는 이들을 통해 찬란하고 열병 같은 청춘들이야말로 어느 시대에서도 상처와 좌절을 안고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치유과 희망을 제시한다.

'매캐한 공기'와 '분신자살' 등 민주화 운동이 이어지던 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젊은이들 간의 '관계'가 소설의 핵심이다.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설렘,첫 키스의 떨림,예기치 못한 이별의 생소함 등은 첨단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오히려 더 고독하고 불안할지 모를 '88만원' 세대들을 향한 것이다.

윤 교수가 수업 첫날 들려주는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소설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가나안 사람으로 거대한 몸집의 힘센 장사였던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이상을 찾지 못한 채 강가에 살며 여행자들을 업어 강 저편으로 건네주는 일을 한다.

어느날 한밤중에 찾아온 작은 아이를 업고 강을 건너자 강물은 범람할 듯 불어나고 아이의 무게는 철근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강을 건너자 아이는 눈부신 빛에 싸인 예수로 변하고,그는 '당신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강을 건넌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설 속 윤 교수는 젊은 크리스토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 주는 것이네.…(중략)…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들이네.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