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은희 "전통의류 사업가로 '제2 인생' 살아요"
'생각난다. 꽃반지 끼고~.' 1960~1970년대를 거친 중장년층이라면 몇번쯤은 따라 불렀을 '꽃반지 끼고'의 가수 은희씨(59 · 본명 김은희 · 사진)가 그의 노래처럼 한적한 농촌마을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전남 함평읍에서 20㎞가량 떨어진 손불면 산남리 교촌마을.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민예학당'이란 조그만 팻말을 세운 곳이 그의 둥지다. 데뷔곡인 '사랑해'를 비롯해 '연가''등대지기' 등 주옥 같은 노래로 궁핍했던 시절,삶에 지친 이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그가 이곳에서 기타 대신 잡은 것은 '감물염색 옷'이다.

그는 요즘 천연염색에 묻혀 산다. 이곳 폐교부지 7000평에서 염색과 디자인을 연구하면서 그의 브랜드 제품인 '봅데강'을 생산한다. 봅데강이란 '(이거) 보셨습니까?'란 뜻의 제주방언.하얀 천을 감물에 담궈 갈색빛으로 물들이는 염색 작업에 마을 주민들도 손을 보태고 있다. 이곳에서 독특한 디자인과 바느질의 활동복 및 내의 등 수제품을 만들어 내는 한편 최근에는 양산을 위해 수도권과 베트남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을 마련,국내외 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특히 일본 도쿄 나고야 오사카 교토 등지에서 순회전시회를 연 데 이어 얼마전 함평 나비축제기간 중에는 일본 업체와 공동 컨퍼런스도 가졌다.

"1985년 무렵이었어요. 11년간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뒤 고향인 제주 장터에서 '갈중의'라는 제주 고유의 옷을 본 순간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갈중의는 감물로 염색한 제주의 노동복인데 방습,방오,방충기능이 뛰어난 기능성 웰빙의류죠.그동안 제가 찾던 아이템이 바로 이거구나 싶더군요. "

1974년 가수로서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 그는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꿨던 그는 뉴욕주립대 패션학과를 다니며 패션디자인과 특수분장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무엇인가를 찾기로 결심하고 귀국한 뒤 감물염색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 것.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본 토속적인 우리 영화 '장마'의 그림 같은 장면들에서 영감을 얻었던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감물염색이 반드시 뜰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 신념이 감물염색 디자이너 겸 연구가라는 외길을 걸어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죠."

그가 함평에 정착하게 된 때는 2003년 겨울.낯설고 외진 곳으로 옮겨오게 된 이유는 보다 완성도 높은 감물염색에 대한 욕심이 발동한 탓이다. 충남 서산에서 완도 보길도까지 서해안 일대를 6개월여 동안 샅샅이 뒤진 끝에 이곳을 찾아냈다. "여기는 해풍이 불어오는 바닷가로부터 1㎞ 미만의 거리에 있는 데다 일조량도 풍부하고 기후도 온화해 농사가 잘되는 곳이죠."

그러나 감물염색의 상업화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함평에 오기 전 서울과 제주 등지에서 10여 차례에 걸쳐 참담한 실패와 좌절을 맛봤다. 감물염색이 소비자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무엇보다 제작에 손이 많이 가는 탓에 가격이 동종 의류에 비해 두 배가량 비싼 것이 원인이었다. 전기세를 못내 단전되는 바람에 제주의 지하공장이 통째로 폭우에 잠기는 모습을 발을 동동구르며 지켜봐야 했고,돈이 없어 섬진강 모래사장에 천막을 치고 염색을 하다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천을 전부 떠내려보내기도 했다.

"지난 25년 동안 감물염색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남들이 알아주지 못할 때 서운함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업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블루진을 압도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의류 '코리아 브라운 진'에 대한 집념과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

함평=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