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애인의 친구를 사랑한 샤갈…그림에 그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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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 재키 울슐라거 지음 |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760쪽 | 3만9000원
20세기 역사의 축소판이었던 삶
격변기의 불안 예술로 승화…영감의 축은 유대인·러시아·사랑
20세기 역사의 축소판이었던 삶
격변기의 불안 예술로 승화…영감의 축은 유대인·러시아·사랑
1985년 98세로 세상을 떠난 마르크 샤갈은 피카소,마티스와 함께 한 세기를 수놓은 거장이다. 러시아의 변방인 벨로루시에서 태어난 그가 파리에 갔을 때였다. 프랑스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그는 러시아를 몽환적으로 변형한 '나와 마을'(1912년),의인화한 동물이 등장하는 '약혼녀에게 바침'(1911년) 등의 작품으로 프랑스 예술계를 긴장시켰다. 목 없는 형상,관능적인 소,지붕 위로 날아다니는 짐승들의 환각적인 세계는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형태와 색채를 어떻게 접근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대상에 신비로운 힘과 호소력을 부여한 샤갈은 이내 '색채의 마술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샤갈》은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샤갈의 전기다. 저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문학과 예술 평론을 쓰는 재키 울슐라거.그는 이 책에서 평생 그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창적인 경지를 구축했던 샤갈의 예술세계와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유대인 빈민촌에서 태어난 샤갈의 삶은 시기와 경쟁,가난과 외로움,학살과 망명,가족의 비극으로 점철된 20세기 역사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기존 예술과 갈등하며 험난한 삶을 예고했다. 첫 번째 스승 유리 펜의 사실주의 화실을 뛰쳐나와 당시 유럽 예술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철저한 소외를 겪으면서도 상징주의 문학을 흡수했다.
프랑스 파리로 간 뒤에도 그는 당시 혁명적이던 인상파,부드러운 색의 앵티미즘에 끌리기도 하고 입체파의 영향도 받았지만 그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각 유파의 정신은 흡수하면서도 자신의 독창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긴장과 저항,타협 속에서 걸작을 쏟아냈던 것이다.
저자는 샤갈의 이런 면모를 끊임없이 추적하면서 그의 예술세계를 지탱한 세 축으로 러시아,유대인,그리고 연인이자 첫 부인인 벨라를 꼽는다. 샤갈은 여자친구인 테아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의 친구 벨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샤갈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이다. 그녀의 두 눈도 나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언제나 나를 알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내 어린 시절,내 현재의 삶,나의 미래도…."
우여곡절 끝에 벨라와 결혼한 샤갈은 연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쏟아냈다. 벨라는 그가 프랑스와 미국에서 망명객으로 떠돌 때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지탱해 준 영혼의 동반자였다. 그래서 벨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샤갈은 절망한다. 캔버스를 벽을 향해 돌려놓고 생애 처음으로 붓을 놓아 버렸을 정도였다.
책에는 샤갈의 여인 5명이 등장한다. 장남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어머니와 벨라,샤갈의 아들을 낳은 버지니아와 두 번째 부인 바바,그리고 딸이다. 저자는 특히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샤갈을 먼저 미국에 보내고 아버지의 그림을 지켜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던 이다를 연민한다.
또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생존 자체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샤갈의 신산한 삶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샤갈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했으면서도 공산정권의 희생자가 됐고,절대주의 화가 말레비치와의 경쟁에서 밀려 영원히 조국을 떠나야 했다. 나치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제2의 고향인 프랑스마저 등져야 했고,프래그머티즘의 나라 미국에서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샤갈은 오뚝이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섰다. 1945년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의 무용극 '불새'의 무대 디자인에 전력을 집중하며 생존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샤갈의 무대 디자인이 공연을 훔쳤다"고 했을 정도였다.
책에 실린 샤갈의 작품 114점과 함께 거장의 삶을 읽노라면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당대의 예술사를 저절로 섭렵하게 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샤갈》은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샤갈의 전기다. 저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문학과 예술 평론을 쓰는 재키 울슐라거.그는 이 책에서 평생 그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창적인 경지를 구축했던 샤갈의 예술세계와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유대인 빈민촌에서 태어난 샤갈의 삶은 시기와 경쟁,가난과 외로움,학살과 망명,가족의 비극으로 점철된 20세기 역사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기존 예술과 갈등하며 험난한 삶을 예고했다. 첫 번째 스승 유리 펜의 사실주의 화실을 뛰쳐나와 당시 유럽 예술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철저한 소외를 겪으면서도 상징주의 문학을 흡수했다.
프랑스 파리로 간 뒤에도 그는 당시 혁명적이던 인상파,부드러운 색의 앵티미즘에 끌리기도 하고 입체파의 영향도 받았지만 그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각 유파의 정신은 흡수하면서도 자신의 독창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긴장과 저항,타협 속에서 걸작을 쏟아냈던 것이다.
저자는 샤갈의 이런 면모를 끊임없이 추적하면서 그의 예술세계를 지탱한 세 축으로 러시아,유대인,그리고 연인이자 첫 부인인 벨라를 꼽는다. 샤갈은 여자친구인 테아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의 친구 벨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샤갈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이다. 그녀의 두 눈도 나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언제나 나를 알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내 어린 시절,내 현재의 삶,나의 미래도…."
우여곡절 끝에 벨라와 결혼한 샤갈은 연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쏟아냈다. 벨라는 그가 프랑스와 미국에서 망명객으로 떠돌 때에도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지탱해 준 영혼의 동반자였다. 그래서 벨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샤갈은 절망한다. 캔버스를 벽을 향해 돌려놓고 생애 처음으로 붓을 놓아 버렸을 정도였다.
책에는 샤갈의 여인 5명이 등장한다. 장남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어머니와 벨라,샤갈의 아들을 낳은 버지니아와 두 번째 부인 바바,그리고 딸이다. 저자는 특히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샤갈을 먼저 미국에 보내고 아버지의 그림을 지켜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던 이다를 연민한다.
또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생존 자체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샤갈의 신산한 삶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샤갈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했으면서도 공산정권의 희생자가 됐고,절대주의 화가 말레비치와의 경쟁에서 밀려 영원히 조국을 떠나야 했다. 나치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제2의 고향인 프랑스마저 등져야 했고,프래그머티즘의 나라 미국에서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샤갈은 오뚝이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섰다. 1945년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의 무용극 '불새'의 무대 디자인에 전력을 집중하며 생존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샤갈의 무대 디자인이 공연을 훔쳤다"고 했을 정도였다.
책에 실린 샤갈의 작품 114점과 함께 거장의 삶을 읽노라면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당대의 예술사를 저절로 섭렵하게 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