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과 개인이 주가 급락을 틈타 저가 매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펀드 환매 압력이 수그러들면서 여유가 생긴 투신권도 반등에 대비해 활발하게 종목을 교체하고 있다. 외국인이 팔아치운 정보기술(IT)과 자동차주를 쓸어담는 점은 비슷하지만 투자 주체별로 선호하는 종목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급의 고삐를 쥔 외국인이 20일에도 3800억원 넘게 매물을 쏟아내 코스피지수는 29.90포인트(1.83%) 하락한 1600.18로 마감했다. 장중 1590선까지 위협하기도 했으나 그나마 국내 투자자들의 저가 매수로 1600선에 턱걸이했다.

◆연기금 · 개인 "싼 업종대표주 담자"

연기금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359억원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 순매수 규모는 3620억원으로 늘었다. 자체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우정사업본부 등 정부기관(7591억원)을 합할 경우 연기금의 주식 매수 규모는 1조1200억원을 웃돈다.

한 연기금 운용본부장은 "2월 이후 증시가 오르는 동안 싸게 살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코스피지수 1700선 이하는 여전히 매력적인 매수 기회"라고 말했다.

이달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현대차로 859억원을 순매수했다. 삼성전자(705억원)와 하이닉스(626억원) LG디스플레이(561억원) 만도(425억원) 등 순매수 상위 1~5위 종목이 모두 IT와 자동차주였다. 외부 불확실성으로 변동성이 커진 틈을 타 실적 모멘텀이 받쳐주면서 주가가 싸진 업종 대표주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증시의 최대 매수세로 떠오른 개인투자자들의 취향도 연기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달 개인 순매수 1위 종목은 하이닉스로 6482억원을 사들였다. 삼성전자(5732억원) LG전자(3852억원)도 각각 순매수 3,4위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생명도 5826억원이나 순매수했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떨어지자 반등을 노린 '스마트머니'가 활발하게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연기금은 현대제철 고려아연 삼성물산 등 업황 회복이 기대되는 철강 및 건설주를 많이 샀고,개인은 KB금융 우리금융 등 은행주에 관심을 보였다.
연기금vs투신, 선호종목 따로 있네
◆기관은 '옐로칩' 선호

투신권은 업종 대표주에 비해 가격 부담이 덜한 '옐로칩'을 중심으로 매수하고 있다. 현대모비스(1567억원) LG디스플레이(1341억원) 삼성테크윈(1187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매수 여력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다 보니 반등할 때 상승 탄력이 좋은 중대형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삼성전자처럼 움직임이 무거운 종목을 팔아 살 만한 '옐로칩'을 문의하는 기관투자가도 있다"고 귀띔했다.

양정원 삼성자산운용 주식본부장은 "기존 주도주는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 데다 외국인 매도로 하락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상승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IT 부품주와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유틸리티주,은행주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률은 투신 '판정승'

지금까지 수익률만 보면 옐로칩에 포커스를 맞춘 투신권이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기존 주도주를 중심으로 외국인의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대형주의 주가가 부진한 탓이다. 이날도 삼성전기가 13만6000원으로 6.85% 급락하는 등 IT와 자동차 대표주의 낙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류용석 현대증권 투자컨설팅팀장은 "IT와 자동차주는 외국인 매물,일부 투자자문사의 '팔자' 물량에다 공매도까지 겹치면서 일시에 급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당분간은 변동성이 큰 종목을 피하고 주도주와의 수익률 갭을 줄이고 있는 내수주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