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진앙지로 한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되면서 3개월간 상승가도를 달려온 국내 증시는 단 보름 만에 그간의 성과를 절반 이상 반납했다. 사태 해결에 시간이 필요한데다 그동안 매수주체였던 외국인이 자금을 빠르게 빼가고 있어 당분간은 증시 반등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며 내성을 기른 국내 투자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가매수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부 충격 이후 큰 폭의 반등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수급 교란으로 낙폭이 커진 대형 우량주를 주목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외부 변수의 영향력이 적은 유통 등 내수 관련주들이 단기 대안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긴 안목에서라면 실적 개선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정보기술(IT) 자동차 관련주를 매수해 보유하라는 권고다.

다만 이는 어느 정도 손실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공격적인 투자자들의 얘기다. 원금이 조금이라도 깨질 경우 잠을 설치는 투자자라면 증시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잠시 떠나 있는 게 낫다는 지적이다.

펀드 투자자들 역시 자신의 펀드 투자군(포트폴리오)을 조정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할 것을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IT · 車 주도주 vs 내수주

이달 들어 지난 주말까지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5조2755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회수해갔다. 올해 전체 순매수 금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같은 기간 기관과 개인은 각각 5694억원과 4조700억원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2년 전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얻은 학습효과로 위기에 대처하는 투자자들의 자세가 달라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악재의 전이속도가 예전만큼 빠르지 않고 남유럽 사태가 이미 8개월 가까이 끌어온 이슈란 점에서 어느 정도 부침은 있겠지만 증시에 추가로 가해질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임진균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지수 1600선은 올해 예상실적 대비 주가수익비율(PER) 9배로 과도하게 저평가된 수준"이라며 "투매에 동참하기 보단 반등에 대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선 관심을 가질 대상으로는 IT(정보기술)와 자동차주가 꼽힌다. 유럽사태로 글로벌 수요가 둔화될 것이란 우려가 일고 있지만 원 · 달러 환율이 다시 급등하고 있는데다 실적 모멘텀도 여전히 좋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들어서도 IT와 자동차주의 2분기 이익 전망치는 꾸준히 상향 조정되는 추세다. 정승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펀더멘털(실적)이 뒷받침되는 종목들은 외부 악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외국인들의 차익실현 매도가 일단락되고 나면 IT와 자동차, 화학 등 기존 주도주들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내다봤다.

설비투자 확대의 수혜가 예상되는 IT와 자동차 부품주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토러스투자증권은 선도업체들의 투자확대로 외형성장이 기대되는 소디프신소재, 케이씨텍, 성우하이텍 등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현대증권도 삼성그룹의 신수종 사업을 주도할 삼성전기와 삼성SDI, 삼성정밀화학, 제일모직을 중심으로 관련주들의 추가 상승 기대가 높다고 평가했다.

◆펀드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활용

증시가 출렁이면 펀드 투자자들도 시장에 맞게 전략을 바꿔야 한다. 직접 투자자처럼 단타에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주가 하락으로 자신이 목표로 한 자산 비중에 변화가 생겼으면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주식형과 채권형 비중을 50 대 50으로 분산 투자하는 투자자가 이번 주가 하락으로 자신의 펀드 자산 내 주식형 비중이 40%까지 떨어졌다면 채권형 자금 일부를 주식형으로 옮겨 비중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이 아니더라도 국내 증시가 저평가 국면에 들어가고 있어 주식형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코스피지수 1600선에선 가격메리트가 있다"며 주식형펀드에 대해 분할 매수에 나설 것을 권했다. 실제 발빠른 투자자들은 최근 급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형펀드는 이달 들어 지난 19일까지 6444억원이 순유입되면서 2008년6월이후 월간기준 최대 유입세를 보이고 있다.

배성진 현대증권 수석연구원은 "코스피지수나 주식형펀드 평균에 비해 수익률이 부진한 펀드라면 이번 조정기에 환매, 성과가 좋은 펀드로 갈아탈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주식형펀드 가입 시점을 저울질해 온 투자자들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상하이종합지수가 2500선대까지 급락하자 중국 본토 주식형펀드엔 오히려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며 "중국 증시 조정이 좀 더 진행될 것이지만 연말이나 내년 이후까지 보면 투자 호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해외 펀드 투자자라면 투자국의 향후 전망을 잘 따져 추가 납입에 나서야할지 아니면 세금면에서 유리한 국내로 옮길지 결정해야한다.

특히 적립식 투자자라면 납입을 중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주식 매입단가를 낮출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을 갖고 꾸준히 넣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정환/강지연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