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비상시에 대비해 외화 유동성 확보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남유럽의 재정 위기나 천안함 침몰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감의 확산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일시적으로 경색되더라도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심각한 외화자금 난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2억5천만달러 규모의 커미티드 라인을 도입했다. 금융회사 간 단기 마이너스 대출 성격인 커미티드 라인이 설정되면 비상시 약정금액 내에서 필요한 만큼 외화를 인출할 수 있다. 커미티드 라인은 평상시 해외 금융기관에 일정액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상대 은행의 거부 시 자금 인출이 중단될 수 있는 크레디트 라인(신용공여한도)과 달리 법적으로 자금 인출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외화 유동성 경색 현상이 생겼을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신한은행은 은행권에서 가장 많은 7억달러의 커미티드 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도를 20억~30억달러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금융위기 때 200억달러의 외화자산과 다양한 크레디트 라인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30억달러의 상환 요구 때 적시에 활용하지 못해 일시적으로나마 곤란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 1억달러의 커미티드 라인이 있으며 하나은행도 최근 커미티드 라인을 도입했다. 우리은행은 국제금융시장의 추가 경색에 대비해 크레디트 라인을 늘리고자 다음달까지 해외 거래 은행을 방문키로 했다. 특히 미국 보험회사 애플랙(Aflac)으로부터 2억달러의 한도를 확보하는 등 해외 금융기관과 개별 접촉해 크레디트 라인을추가 확보하고 있다. 은행들은 채권 발행을 통한 외화 조달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최근 남유럽 국가의 재정 문제가 유럽 전역이나 일본 등으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면서 외화 조달 비용이 비싸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행협회(BAA)에 따르면 은행권 단기자금 조달비용의 척도가 되는 3개월 물 달러 리보(런던은행간 금리)는 지난주 0.445%로 지난해 8월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리보는 지난 2월 0.252%에서 이달 7일 0.428%로 치솟은 뒤 지난주 0.45%에 육박했다. 천안함 사태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감 고조로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점도 외화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20일까지 5거래일간 2조5천억원가량 주식을 순매도했으며 이달 중으로는 6조3천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유럽연합(EU) 국가의 한국에 대한 투자 잔액이 지난해 말 2천343억달러로 전체 외국인 투자액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유럽 자금의 이탈이 본격화되면 외화 유동성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은 선제적인 외화 조달을 위해 연간 목표액 17억달러 가운데 10억달러가량을 이미 조달 완료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7일 미화 5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고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약 4억달러에 대해서도 일부 상환이나 대출 방식 등 여러 방안을 검토중이다. 연초에 300억엔의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한 국민은행은 실무부서에서 해외 채권시장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위기 때는 외화채권 발행을 위한 가산금리가 급등하는 데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외환조달을 못 해 외화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커미티드 라인 등으로 평소에 보험을 들어두는 게 낫다"며 "향후 유동성 위기 재발에 대비해 비상 유동성 수단들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주연기자 jychae@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