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천안함 루머
독하기로 말하면 누구도 측천무후를 따라가기 어렵다. 어린 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황후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웠고,아들들을 잇따라 폐위시킨 다음 직접 황위에 올라 공포정치를 폈다. 모함과 술수로 권좌를 지키려다 보니 관청의 네 귀퉁이에 함을 만들어 놓고 투서를 유도했다. 밀고자에게 상까지 주었으니 비방과 괴소문이 난무할 수밖에.모함의 기술을 다룬 '나직경(羅織經)'이란 책까지 나돌았다.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조선 말기엔 요즘 대자보와 비슷한 벽서(壁書)와 괘서(掛書)가 횡행했다. 조선 이 멸망한다거나, 변란이 일어날 것이니 빨리 피하라는 등 격한 내용이 많았다. 걸리면 엄벌에 처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엔 미국이 참전 명분을 얻기 위해 기습을 용인했다는 음모론이 떠돌았다. 격침돼도 상관 없는 구식 전함들만 배치했다는 게 증거라고 했다. 음모라기엔 미국의 피해가 컸고 1922년 워싱턴 군축조약으로 새로운 전함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루머는 정보 독점이 심하고 소통이 잘 안되는 사회일 수록 많이 나도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정보의 소수 독점이 무너진 인터넷 시대에 오히려 괴소문이 극성을 부리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천안함 사건만 해도 합동조사단의 '결정적 증거'제시에도 불구하고 악성루머가 끊이지 않는다. 자작극설에서부터 미국 잠수함의 오인 공격설,단순 사고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어뢰 추진 후부의 '1번'이란 글씨 색깔이 한나라당 고유색과 비슷하니 불법선거물로 다스려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루머는 내가 믿든 안믿든 누구에게 전하는 순간 더 강력하게 자기증식하는 속성을 지녔다. 일단 루머가 퍼지면 공식적인 해명만으로 소멸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독일의 스타 변호사 미하엘 셸레는 '소문,나를 파괴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이란 책에서 "양식 있는 시민이 루머를 만드는 데 참여하지 않을 거란 추측은 순진한 것"이라며 "누구라도 루머의 범인이자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썼다.

악성 루머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사회로 돌아온다. 광우병 괴담으로 사회 전체가 그렇게 홍역을 치르고도 다시 천안함 루머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러다간'루머대처법 연구소'라도 만들어야 할 모양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