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축구 축제일 뿐 아니라 광고 축제이기도 하다. 월드컵만큼 전 세계 소비자들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키는 경기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공식 후원사든 아니든 월드컵을 앞두고 기업들은 광고물량을 쏟아붓는다. 그중 관심을 끄는 게 바로 기업들의 앰부시(ambush · 매복) 마케팅이다. 앰부시 마케팅이란 공식 후원사가 아닌 기업이 매복하듯이 후원사인 것처럼 행세하는 광고와 홍보 활동을 뜻한다. 이를 두고 "상도의에 어긋나는 무임승차"라는 비판과 "전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를 돈 많은 기업이 독점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튀는 아이디어…'박지성 위스키'

현재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후원사는 현대 · 기아자동차 등 6곳이다. 대한축구협회는 KT,삼성,나이키 등 13개사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다. 따라서 이들 후원사가 아닌 기업이 월드컵을 떠올리게 하는 광고를 내보낸다면 넓은 의미에서 모두 앰부시 마케팅으로 볼 수 있다.

교묘하게 선을 넘지 않는 방법도 다양하다. 월드컵이라는 말 대신 '남아공' '한국 축구' '16강' 등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단어로 에둘러 표현하는 식이다. 대표팀 유니폼 대신 비슷한 붉은 옷을 입고 응원하는 장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직접 만든 응원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광동제약의 비타500 광고와 SK텔레콤의 거리응원 광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빨간 색의 '사커 팬츠' 기저귀를 내놓은 유한킴벌리와 축구대표팀 응원 콘서트를 여는 롯데월드도 앰부시 마케팅을 벌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개별 선수 후원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인기가 가장 높은 박지성 선수는 GS칼텍스,SK텔레콤,질레트 등의 광고모델로 활동 중이고 위스키 업체인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임페리얼15 박지성 리미티드 에디션',편의점 GS25는 '박지성 주먹밥'까지 출시했다. 보광훼미리마트도 이청용과 계약을 맺고 그의 얼굴을 넣은 삼각김밥,생수,라면 등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경기 티켓 대신 남아공행 항공권이나 호텔 숙박권 등을 내건 경품 행사도 있다.

◆합법과 불법의 기준

업계에 따르면 비후원사가 △월드컵,FIFA,대한축구협회,공식 후원사 등의 명칭 △FIFA의 저작물인 로고,슬로건,마스코트,주제가 △경기 장면 △국가대표팀 유니폼 △대표팀 단체사진 등 FIFA나 축구협회의 유 · 무형 자산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규정만 피하면 법적 판단이 모호해진다는 얘기다. 김근한 이노션 브랜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은 "기업들이 이런 규정은 알아서 피해가는 데다 대회 기간 반짝 진행하고 끝나므로 대부분 사후 경고에 그친다"고 말했다.

후원업체들이 직접 대응하기 어려운 것도 맹점으로 꼽힌다. 법무법인 세종의 임보경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FIFA나 축구협회는 부정경쟁방지법 등에 의한 손해배상이나 권리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수 있지만 공식 후원사가 경쟁사에 소송을 거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후원사 명칭과 경기 장면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또 개별 선수와 계약을 통해 광고하면서 월드컵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을 두고 불법이라는 식으로 제동을 걸기도 어려운 상태다. 지난해 9월 축구협회가 박지성,정대세 선수가 등장한 박카스 광고를 문제삼아 동아제약과 제일기획에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가 방송을 중단하는 선에서 합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후원사의 광고를 대행하는 광고회사들이 난처해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광고대행사 이노션은 올초부터 "월드컵 분위기가 나는 광고를 제작해 달라"는 광고주들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FIFA 공식 후원사인 현대차와 축구협회 공식 후원사인 KT가 이 회사의 주 고객이기 때문이다. 유옥상 이노션 스포츠마케팅팀장은 "공식 후원사의 광고를 만드는 입장에서 앰부시 광고를 함께 만들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현일/임현우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