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는 디자인 회사다. 자동차 만드는 회사를 왜 난데없이 디자인 회사라고 부르냐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겠지만,지금의 기아차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디자인이다. 자동차 회사는 설비투자 중심의 대표적인 제조업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기아차는 이런 통념을 바꿔놨다.

◆4년에 걸친 디자인 혁명의 결실

변화의 시작은 2006년 피터 슈라이어 수석디자이너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하면서다. 그는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디자인을 총괄하며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의 가세로 디자인 혁신에 들어간 기아차는 2008년부터 본격적인 탈바꿈을 시작했다.

당시 신차 발표회 때 기아차는 기업설명회(IR)를 함께 열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IR에는 슈라이어 부사장도 참석했다. 그는 기아차의 디자인과 관련된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차별화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기아차의 노력은 고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데 성공했고,그 동안의 노력이 이제 구체적인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아차의 매출 중 신차 비중은 2008년 19.0%에서 지난해 33.6%로 껑충 뛰어올랐다. 올해는 신차 비중이 42.4%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스포티지와 로체의 후속 모델인 스포티지R와 K5 등 주력 신차가 상반기 라인업에 가세한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선 보인 K7는 올들어 판매가 본격 궤도에 올랐다.

기아차는 상당수 모델에서 현대차와 엔진,변속기 및 차량의 기본 뼈대인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플랫폼을 통합한 차량 종류가 늘어나면서 기아차의 판매량 증가는 물론이고 판매 제품군 다양화와 수익성 개선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는 최근 기아차의 향후 1년 목표주가를 3만3000원에서 3만85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목표가는 미국,중국,슬로바키아 등 기아차 글로벌 생산법인의 올해 예상 EBITD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총액을 2조7465억원으로 추산한 것을 근거로 산출했다. 기업가치(EV)를 EBITDA로 나눈 EV/EBITDA는 6.2배를 적용했다. 이는 현대차보다 20% 할인한 수준이다. 실적 개선세가 돋보이는 만큼 앞으로 현대차와의 시가총액 격차와 주가 할인비율은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기아차 관찰의 3대 포인트

기아차의 투자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기아차 글로벌 사업장의 가동률이 정상 수준으로 상승,연결 영업실적이 구조적으로 빠른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본사는 물론 중국 슬로바키아 등 지난해 정상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주요 해외 공장의 가동률이 올들어 꾸준히 오름세를 타고 있다. 미국 조지아 공장은 지난 1분기 가동률이 120%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는 우선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이 돋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지역 판매는 포르테,소울 등 소형 신차 출시효과에 힘입어 올해 연간으로 전년 대비 32.6% 증가한 31만8000대에 달할 전망이다. 또 미국 판매량은 소렌토R 판매 호조와 향후 투입될 스포티지R와 K5가 가세하면 작년보다 11% 늘어난 33만4000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미국 시장점유율은 3%대에 진입하면서 주가에도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주요 해외 판매법인의 손익 개선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악성 재고 소진과 신차의 순차적인 투입으로 올해 해외 판매법인의 적자폭이 크게 축소될 전망이다. 신모델의 글로벌 판매가 본격화하면서 본사의 해외마케팅 비용 부담은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개별 기준 순이익보다 연결 기준 순이익 개선폭이 돋보일 것으로 보인다. 작년엔 해외 판매법인의 누적 결손으로 연결 순이익이 개별 기준 순이익보다 4000억원 이상 적었다. 올해 1분기 본사의 제한적인 마케팅 비용 지원에도 해외 판매법인이 전반적으로 소폭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아차의 글로벌 생산 · 판매 네트워크가 안정 궤도에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재무구조 안정화는 연결 기준 이익 개선에 한층 기여할 전망이다. 작년 말 기아차의 글로벌 순차입금은 악성재고 해소와 해외법인의 유동성 개선에 힘입어 2008년 말에 비해 3조8000억원 줄어든 7조2000억원을 기록,재무구조가 대폭적으로 개선됐다. 순차입금 감소는 기아차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수준)에도 좋은 소식이다.

'형님만한 아우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앞으로 기아차는 '형님'(현대차)을 따라잡을 기세다. 플랫폼 통합으로 수익성이 좋아진 신차 출시와 국내외 공장 전반의 가동 호조가 지속되면서 수익성 개선과 이익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지표에서 현대차와의 격차를 크게 줄이고 있다. 현대차는 전세계 공장이 이미 완전 가동 수준에 근접해 있어 상대적으로 기아차의 실적 개선 모멘텀이 더 큰 상황이다. 2012년까지 플랫폼 통합과 라인업 개편을 마무리지으면 현대차와의 실적 차이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