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여간첩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영화 '적벽대전 2:최후의 결전'엔 2명의 여자 스파이가 등장한다. 남장한 채 조조군 진영에 잠입해 군사정보를 빼오는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과 동남풍이 불 때까지 전투를 늦추기 위해 조조를 유혹하러 간 주유의 아내 소교다. 그들 덕분에 손권과 유비 연합군은 승리한다.
허구지만 영화는 여자 공작원이 전황(戰況)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여간첩의 대명사는 마타 하리다. 마타 하리란 자바어로'여명의 눈동자'란 뜻.본명은 마가레타 젤러(1876~1917)다. 젤러는 네덜란드 중류 가정에서 태어나 수녀원에 딸린 학교를 다녔다.
인생이 바뀐 건 18살 때 만난 뱃사람 메클레오드와의 사랑 때문.그를 따라 동인도로 갔으나 알고 보니 난폭한 술주정뱅이었던 것.유럽으로 돌아온 젤러는 마타 하리란 이름으로 에로틱한 춤을 춘다. 1차 대전이 터지자 뭇남성을 사로잡은 그에게 독일정보부가 손을 뻗친다.
마타 하리는 이후 독일과 프랑스 양쪽을 오가지만 아무 데서도 신뢰받지 못하다 잇따른 패배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하던 프랑스 정부에 의해 체포돼 총살당했다. 결국 전설적 여자 스파이란 얘기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일화로 판명됐다.
실제 탁월한 여간첩은 루스 쿠친스키란 소련 첩보원이었다. 소냐란 암호명을 쓴 쿠친스키는 1933년 러시아 정보국 요원이 된 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영국에서'붉은 오케스트라'라는 유럽 내 조직망을 관리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스파이 활동을 위해 정략적으로 결혼한 세 번째 남편과 아이 둘을 낳고 살면서 암약한 통에 들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45년과 47년 체포된 요원의 자백에도 불구,평범한 외모로 인해 영국군이 반신반의하는 사이 동독으로 탈출했다.
조선족으로 위장,중국에서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서울메트로 간부로부터 서울지하철 관련 기밀자료를 빼내 북한으로 보낸 여간첩 김모씨가 구속됐다는 소식이다. 김씨는 북한에서 장사를 하다 97년 조선노동당 당원증을 분실한 뒤 처벌을 면하려 공작원이 됐다고 한다.
여간첩의 상당수는 마타 하리처럼 운명의 덫에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스파이의 말로는 참담하기 일쑤다. 영화만 보고 행여 낭만적 혹은 대수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모르는 여자의 꾐에 빠져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것 모두 파멸에 이르는 길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허구지만 영화는 여자 공작원이 전황(戰況)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여간첩의 대명사는 마타 하리다. 마타 하리란 자바어로'여명의 눈동자'란 뜻.본명은 마가레타 젤러(1876~1917)다. 젤러는 네덜란드 중류 가정에서 태어나 수녀원에 딸린 학교를 다녔다.
인생이 바뀐 건 18살 때 만난 뱃사람 메클레오드와의 사랑 때문.그를 따라 동인도로 갔으나 알고 보니 난폭한 술주정뱅이었던 것.유럽으로 돌아온 젤러는 마타 하리란 이름으로 에로틱한 춤을 춘다. 1차 대전이 터지자 뭇남성을 사로잡은 그에게 독일정보부가 손을 뻗친다.
마타 하리는 이후 독일과 프랑스 양쪽을 오가지만 아무 데서도 신뢰받지 못하다 잇따른 패배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하던 프랑스 정부에 의해 체포돼 총살당했다. 결국 전설적 여자 스파이란 얘기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일화로 판명됐다.
실제 탁월한 여간첩은 루스 쿠친스키란 소련 첩보원이었다. 소냐란 암호명을 쓴 쿠친스키는 1933년 러시아 정보국 요원이 된 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영국에서'붉은 오케스트라'라는 유럽 내 조직망을 관리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스파이 활동을 위해 정략적으로 결혼한 세 번째 남편과 아이 둘을 낳고 살면서 암약한 통에 들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45년과 47년 체포된 요원의 자백에도 불구,평범한 외모로 인해 영국군이 반신반의하는 사이 동독으로 탈출했다.
조선족으로 위장,중국에서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서울메트로 간부로부터 서울지하철 관련 기밀자료를 빼내 북한으로 보낸 여간첩 김모씨가 구속됐다는 소식이다. 김씨는 북한에서 장사를 하다 97년 조선노동당 당원증을 분실한 뒤 처벌을 면하려 공작원이 됐다고 한다.
여간첩의 상당수는 마타 하리처럼 운명의 덫에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스파이의 말로는 참담하기 일쑤다. 영화만 보고 행여 낭만적 혹은 대수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모르는 여자의 꾐에 빠져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것 모두 파멸에 이르는 길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