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시나리오입니다. 솔직히 더 큰 상(황금종려상)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시나리오를 평가받은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이번 수상으로 격려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

23일 오후(현지시간)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시'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소감이다. 이 감독은 2007년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긴 데 이어 이번 수상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두 차례 수상했다.

이 감독은 '시'에 대해 "개인의 일상이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개인이자 집단 공동체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윤정희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한 것은 아쉽다"며 "우리 식의 소통 방식을 꾸준히 보여주면 언젠가는 황금종려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주인공 역을 해낸 윤정희씨는 "팀 버튼 감독이 심사위원장에 선임됐을 때 사실 걱정스러웠다"며 "팀 버튼 감독 취향에는 '시'보다 아핏차퐁(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태국 감독) 영화가 더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시'의 경쟁부문 수상은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감독상) 이후 다섯 번째.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60대 할머니가 시 쓰기에 도전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윤정희씨가 16년 만에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복귀한 작품.

영예의 황금종려상은 태국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 후 캔 리콜 히즈 패스트 라이브스'(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에 돌아갔다. 엉클 분미가 요양차 시골에 머무는 동안 죽은 아내의 유령을 만난 이야기를 태국의 전설과 결합시킨 작품이다. 심사위원대상은 프랑스 출신 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신과 인간'(OF GODS AND MEN),남우주연상은 '비우티풀'(BIUTIFUL)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아워 라이프'의 엘리오 제르마노가 공동 수상했다. 여우주연상은 '서티파이드 카피'의 줄리엣 비노쉬,심사위원상은 '스크리밍 맨'(A screaming man)의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이 각각 받았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작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뚜렷이 드러냈다. 피의 복수와 섹스를 대변했던 지난해 흐름과는 사뭇 달랐다. 존재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 '시' '어나더 이어' '서티파이드 카피' 등이 대표적이다. 또 아시아 영화의 힘이 돋보였고 아프리카 차드(스크리밍 맨)나 우크라이나 영화(마이 조이) 등 제3세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미국 영화로는 덕 리만 감독의 '페어 게임'만 초청됐다. 경제위기 이후 미국 예술영화 제작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칸이 화제성만 좇는 데서 탈피해 진지함을 추구했다는 평가도 따랐다.

칸(프랑스)=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