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온 킹'을 보면 우두머리 사자(무파사)를 살해하려는 동생 사자(스카)의 음모가 나온다. 스카는 하이에나들을 시켜 소떼를 놀라게 만들고,놀란 소떼는 엄청난 속도로 무파사의 아들인 새끼 사자(심바)가 뛰노는 곳으로 질주한다. 결국 무파사는 아들 심바를 구해내느라 치명상을 입은 채 가까스로 절벽을 기어오르다 기다리던 스카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물소들이 질주한 이유는'남들이 뛰니 불안해져서 나도 뛸 수밖에 없다'는 행동,곧 군집행동의 결과다. 그런데 이처럼 무파사 같은 희생자를 유발하는 군집행동은 동물의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1996년 231억달러라는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한국 경제는 달러당 800원대의 환율을 그대로 둔 채 수지방어에 실패하고는 결국 1997년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과잉투자,금융규제 실패,단기차입 과다 등 이유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자본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부분이다. GDP의 4.2%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외화가 부족해지고 가장 달러가 절실히 필요해질 때 외국자본은 등을 돌렸다. 신규대출과 투자가 절실한 시점에서 거꾸로 기존 대출과 투자에 대한 무자비한 회수가 시작됐다. 97년 11월부터 98년 3월까지 단 5개월간 214억달러가 유출됐다.

이처럼 한국 경제에 '불안'을 느낀 외국자본이 일시에 유출되는 '군집행동'이 나타나자 우리 경제는 두 손을 들었다. '너희들이 한꺼번에 나가버리는 바람에 내가 위기를 당했다'는 논리(날벼락론)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 네가 잘못이다'는 논리(기초체력부재론)에 압도당했다.

최후의 보루인 IMF(국제통화기금)는 외화 지원과 함께 혹독한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30%에 육박하는 고금리에다 흑자재정 유지라는 초긴축정책이 시행되면서 한국 경제는 1998년 -6.9%라는 역사상 최대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죽음의 고통'을 겪었다.

얼마 전 2008년 9월 리먼 파산 이후 12월까지 4개월간 695억달러의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다. 당연히 환율은 요동쳤고 우리는'혹시 또'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주가 환율이 불안해지는 와중에서 2700억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고와 미국과의 300억달러 통화스와프가 아니었으면 위기를 또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글로벌 위기 이후 단기자본이동에 대한 규제는 상당 부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브라질은 헤알화의 과도한 절상방지를 위해 외국인의 헤알화 표시 주식 · 채권 투자에 2% 거래세를 부과한 바 있고 최근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도 신흥시장국들의 자본유입 규제 필요성에 대해 언급을 한 보고서가 나왔다.

물론 이러한 자본이동규제 내지는 관리에 대한 필요성과 관련,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단기자본이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외은지점의 경우 단기자본이동에 대한 규제에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가 지나친 자본의 움직임에 노출돼 건전성과 안정성을 잃는다면 이는 외은지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적절한 수준의 규제는 수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우리가 너무 주도적으로 나서기보다는 G20 의장국으로서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하면서 국제적 흐름을 잘 관찰하고 전체적인 국제공조 흐름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협조적 분위기를 통해 단기자본이동의 변동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적정한 방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해본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금융재정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