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펀드 등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성격이 있는 금융 상품 과세 문제가 자본시장의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서류상 회사에 불과한 데도 일반 법인처럼 취급하다 보니 세금이 과도해져 다양한 상품 출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수 확보에만 치중하는 정부와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업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페이퍼컴퍼니 세금이슈 잇따라

"이러다간 강원도 양구에 스팩을 설립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 A증권사 스팩업무 담당 임원은 "복잡하고 무거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부담이 가장 작은 강원도로 법인 등록지를 옮기자는 농담이 나올 정도"라며 "불합리한 과세체계가 스팩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팩은 지난해 2월 자본시장법이 시작된 이후 거의 유일하게 나온 금융 신상품으로 출시 초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세제 문제가 불거지자 투자자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장 초반 공모가의 2배 이상까지 뜨겁게 달라올랐던 스팩 주가는 세금 부담이 크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공모가 아래로 추락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했다. 합병 후 3년 내 피합병 법인의 대주주가 주식을 한 주라도 팔 경우 세제 혜택을 못 받도록 정한 법인세법 시행령이 특히 문제점으로 꼽힌다. M&A업계 관계자는 "세제 지원은 M&A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펀드마다 4만5000원 선의 '면허세'를 부과한 행정안전부의 뜬금없는 조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행안부는 자본시장법에서 '신고' 대상이던 펀드를 '등록'하도록 한 조항을 들어 작년 5월 펀드를 면허세 부과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같은 펀드 관련 세금 문제는 해외펀드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최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펀드들이 세금 때문에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해당 펀드의 수탁사인 한 은행 관계자는 "동남아 펀드와 인도네시아 투자 펀드들이 현지에서 큰 수익을 냈지만 세무당국에 적절하게 신고하지 못해 세금 감면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 양국 간 맺은 조세협약에 따라 펀드 거주지를 명시한 서류를 제출하면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는데,올초 관련 신고양식이 '법인'과 '개인'으로만 투자자를 분류하도록 개정된 탓에 펀드 거주지를 적을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일반 법인과 다른 세제 마련 시급

이처럼 페이퍼컴퍼니와 관련된 세금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는 것은 자본시장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데 비해 관련 세제 정비가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인 스팩의 경우 회사 목적이 비즈니스가 아니고 빨리 M&A해서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라며 "일반 법인처럼 취급할 경우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호찬 금융투자협회 팀장도 "페이퍼컴퍼니의 경우 수익이 나도 단순히 현금이 지나가는 '도관'에 지나지 않으므로 과세 대상과 방법 등을 정하는데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일반 법인처럼 간주해 과세하려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정부가 서둘러 제도를 도입하려는 의욕이 앞서 세제 관련 부분을 세밀하게 챙기지 못한 것 같다"며 "금융위의 적극적인 역할이 아쉽다"고 말했다.

금융위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와 관련된 세금 문제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어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며 "우선 시급한 스팩에 대한 과세부터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고 스팩이 원만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세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도 조세특례제한법에 스팩 관련 특별 조항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금융위와 재정부 세제실에 제출하는 한편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전반적인 과세 문제를 풀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