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마켓들이 그동안 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꼽혀온 '비싼 제품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해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손을 잡았다. 이마트의 '바잉 파워'를 활용해 주요 공산품을 공동 구매하면 동네 슈퍼들이 각자 사들일 때보다 매입단가를 5~10%가량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 역시 제조업체에 대한 바잉 파워를 한층 더 키울 수 있는 기회란 점에서 사실상 경쟁관계에 있는 동네 슈퍼들을 파트너로 맞이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등과 '대 · 중소 유통업체의 상생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앞으로 동네 슈퍼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이마트에서 대신 구매해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국 동네 슈퍼들은 각자 매장에서 판매할 물품의 종류와 수량을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슈퍼조합)와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체인조합)에 신청하면 지금보다 5~10% 저렴한 가격에 납품받을 수 있다.

이마트는 슈퍼조합과 체인조합에서 취합한 각 슈퍼들의 주문내역을 넘겨받아 농심 CJ 등 주요 제조사에 자신의 물량과 동네 슈퍼 물량을 합산해 한꺼번에 주문하게 된다. 중기청은 9만6000개에 달하는 전국 동네 슈퍼 가운데 당장 2000여개가 이 시스템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동구매 품목은 동네 슈퍼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라면 등 가공식품을 포함한 생활용품이며,이마트의 PL(자체 상표) 상품도 일부 포함된다. 다만 채소 달걀 등 신선식품과 유제품은 유통기간이 짧은 점을 감안해 공동구매 품목에서 일단 제외했다.

이마트를 통해 공동구매한 물품은 이마트 물류창고에 보관한 뒤 전국 16개 슈퍼연합회 물류센터와 91개 체인조합 물류센터를 통해 동네 슈퍼에 배송된다. 이마트는 일부 대형 동네 슈퍼마켓에는 직접 배송해줄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이마트가 일반 소비자가 아닌 소매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물품 구입 및 배송을 대행해 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도매 유통업'에 발을 내디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롯데슈퍼 홈플러스 GS수퍼 등 경쟁업체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에 직접 뛰어든 탓에 영세상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점을 감안,대안으로 일반 소비자가 아닌 영세상인들을 '이마트의 고객'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실제 이날 협약도 이마트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관계자는 "공동 구매나 물품 보관 · 배송에 드는 비용은 원가 수준에서 최소한만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네 슈퍼들은 이번 협약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최장동 체인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거의 모든 슈퍼마켓들이 이마트와의 공동구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향후 3년 내 1만개가 넘는 슈퍼마켓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