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믿어왔던 역사 상식…권위있는 역사서 근거로 파헤쳐
그는 하버드대가 영어권의 대표적인 중국통사를 표방하며 새로 내놓은 《중국사》 시리즈에서 진시황이 제국 통치를 위해 사상 통제와 사상 표준화를 도모하면서 우연하게 분서의 비난을 뒤집어 쓰게 됐다고 설명한다. 진시황은 사상 통일을 위해 당시 제국 내 대부분의 서적을 한곳에 모아놓고 열람을 제한했다. 그런데 진 · 한 교체기의 혼란 속에 항우가 아방궁을 불태우면서 제국도서관도 같이 소실됐고,후대의 한나라 학자들이 진나라의 폭정을 강조하면서 진시황의 '분서' 신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독사(讀史)》는 이처럼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 상식이 실제로는 그와 상반되거나 전혀 다른 역사적 진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역사인문학을 위한 시선 훈련'을 부제로 달았듯이 근거 없는 추측이나 흥미끌기식 뒤집기가 아니라 권위 있는 학자들이 쓴 역사서를 토대로 역사적 진실 읽기를 시도한다.
가령 저자는 '과연 네로는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시를 읊조렸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로마 대화재의 진실에 접근한다. 로마 대화재 당시 네로 황제는 화재 대처와 뒷수습 과정에서 탁월한 행정능력을 보였으나 정치적 '파워 게임'에서 패배해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그후 그의 각종 개인적 기행에 '로마를 불태웠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에드워드 챔플린 프린스턴대 고전학과 교수의 최신 이론,당대 역사서들의 네로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와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모습 등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무적함대 패배를 계기로 스페인과 영국의 해상패권이 교체됐다는 데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메스토 옥스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패배한 직후 일반의 예상과 달리 스페인의 해상 장악력은 전혀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무적함대 패배의 교훈을 받아들여 새롭게 개선된 제2의 무적함대를 만들어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제해권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역사상식으로 당연시해 온 12개 항목 59개 주제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역사로부터 비롯된 일상생활의 주요 가치들에 대해 근본적인 재성찰을 요구한다. 특히 일반에 널리 소개되지 않은 서구의 주요 역사 저작들을 망라하면서 전문가들의 역사 해석을 충실히 소개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또 장(章)마다 '근면''정복''연쇄살인''재판''조기 어학교육' 등의 키워드를 통해 일상의 주제나 사회적 이슈를 역사 해석과 연관시켜 실감나는 역사 읽기를 시도한다. 이는 우리의 현실과 과거의 역사가 더 큰 역사의 한 축으로 같이 굴러가고 있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인 저자는 2008년 12월부터 한경닷컴(www.hankyung.com)에 200여만명이 방문한 블로그 '김동욱 기자의 역사책 읽기'를 운영해 온 인기 블로거다. 동서양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저자가 펼치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