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건설업체가 독일의 나사전문회사에 인천공항의 철재지붕을 완벽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첨단기능나사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2주일 뒤에 독일업체로부터 나사샘플이 도착했다. 포장을 뜯어보니 그 속에 들어 있는 나사는 다름 아닌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이 나사를 만든 업체를 수소문해 찾아보았다. 그 회사는 바로 인천공항 건너편 시화단지 4구역에 있는 명화금속이었다.

명화금속은 40년간 오직 나사만 만들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드릴형 나사는 10초 안에 두꺼운 철판을 뚫는다. 이 나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회사만 만들 수 있다. 중소기업이지만 나사분야에서 203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이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특수나사는 독일 미국 일본 등으로 수출한다. 이 회사는 1999년 '벤처'확인을 받았다. 이어 2007년엔 '이노비즈(기술혁신기업)'인증도 받았다.

이 두 가지 인증 덕분에 명화금속은 조세 금융 등에서 상당히 혜택을 보았다. 하지만 임정환 대표는 "이제 두 가지 인증제도보다 앞서가는 새로운 제도가 마련돼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한다.

사실 지금까지 벤처확인 기업은 다양한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나 문제는'이노비즈'에 대해서도 벤처기업과 똑같이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벤처와 이노비즈에 대해 '정부가 이렇게 똑같이 혜택을 준다면 굳이 두 가지 인증제도를 중복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중복지원에 대해 가장 먼저 시비를 건 곳은 국가권익위원회다. 지난해 7월 권익위는 벤처확인제도와 이노비즈인증제도가 기업들에 불편을 주고 있다면서 양자를 통합할 것을 권고했다. 중소기업청은 지난해 1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두 인증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중소기업계가 격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노비즈 인증기업들로 구성된 이노비즈협회가 강력하게 통합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실제 벤처확인은 DJ 정부가 'IMF 사태'극복을 위해 내놓은 파격적인 중소기업 지원정책이다. 반면 이노비즈인증은 노무현 정부가 마련한 혁신적인 정책이다. 그럼에도 이들 2개 정책은 여전히 비슷하게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벤처와 이노비즈의 혜택내용을 면밀히 뜯어보면 곳곳에서 차이점이 나타난다. 벤처기업은 조세감면과 투자촉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이노비즈는 금융지원과 기술혁신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두 가지 정책은 중소기업의 전문성을 지원해주는 데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벤처와 이노비즈 인증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는 비주얼인포시스 이진표 대표는 "벤처와 이노비즈의 용도는 분명히 달라 나름대로 역할을 한다고 본다"면서도 "산업조류와 경제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는 중소기업 인증정책을 다듬을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벤처기업 수는 1만9500개,이노비즈는 1만6600개사에 이른다. 여기에 속해 있는 중소기업인들의 대답도 한결같다. "이제 벤처도 이노비즈도 아닌 보다 미래지향적인 혁신기업 인증제도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명화금속과 같은 혁신형 전문기업이 터를 잡을 수 있게 '전문기업 인증제도'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전문기업에 조세감면 금융지원 시장개척 등을 과감하게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이명박(MB)식 중소기업정책'이 시급히 나와야 할 때다.

이치구 한경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