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사동에 사는 김모씨(48 · 여)는 지난 25일 주가가 대폭락했을 때 원래 갖고 있던 주식형 펀드에 5000만원을 추가로 넣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전군에 전투 태세를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김씨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부가 대북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전쟁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김씨의 판단은 적중했다. 주가는 26일부터 바로 반등했다. 단 이틀 만에 김씨가 얻은 수익률은 4%에 달했다.

강남 부자들은 최근 천안함 사태를 저평가된 주식을 싸게 매입하는 기회로 삼고 오히려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경환 국민은행 잠실롯데 PB센터 팀장은 "지난 25일 북한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외국인들과 달리 정작 강남 부자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며 "오히려 투자 타이밍으로 판단해 개별주식이나 주식형 펀드에 여윳돈을 투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고 팀장은 또 "특히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사들이는 모습을 보고 함께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원경 하나은행 압구정 골드클럽 PB센터장도 "10억원 정도의 현금을 바로 동원할 수 있는 강남 부자들은 지난 25일 5000만~1억원 정도 추가 투입한 사례가 많았다"며 "대체로 직접투자보다 인덱스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를 선호하는데 중장기적으로 분할 매수한다는 차원에서 들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강 센터장은 "아직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떨어질 때를 대비,여윳돈을 모두 투입하지 않고 좀 더 기다려 보겠다는 부자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환율 급등세를 이용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내다 파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고득성 SC제일은행 삼성PB센터 부장은 "달러 사재기는커녕 오히려 갖고 있던 달러를 내다 팔아 차익을 챙기려는 부자들이 더 많았다"면서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앞으로도 이 같은 기회가 몇 번 더 올 것으로 판단,언제라도 투자할 수 있도록 현금 보유 비중을 늘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공식 발표할 만큼 국가적인 안보 위기가 부각된 상황에서 강남 부자들이 이처럼 태연한 이유는 오랜 기간 체득해온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강남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대체로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많아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유리한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은 이에 대해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는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현 정부가 한반도를 전쟁 상황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는 것 같다"며 "특히 금융 자산보다 부동산 비중이 높은 이들 부자는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유리한 입장에 서 있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강남 부자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보다는 남유럽발 재정위기에 대한 여파를 더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관석 신한은행 WM사업부 재테크팀장은 "천안함 문제보다는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언제쯤 끝날 것인지 문의하는 고객들이 훨씬 더 많다"며 "실제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번 위기 국면이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펀더멘털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어 이에 대한 우려가 더 높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