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이머징마켓 아프리카] (9·끝) '급행료' 필요할때 있지만…'롱런' 하려면 법규정 지키는 게 최선
가나의 테마 시에서 정유저장 시설을 운영하는 임도재 글로텍 사장은 교민사회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통한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12년 만에 연간 4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일궜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철저한 현지 시장 파악에서 시작한다. 1993년부터 5년간 SK건설 가나 지사장으로 일하면서 현지 문화와 사업에 필수적인 대관(對官) 업무 등을 몸으로 배웠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1998년 SK건설에서 독립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그에게 녹록지 않았다. 최종 사인을 앞두고 계약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2002년께부터 200만달러 규모 정유저장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에는 탄력이 붙었다. 임 사장은 "SK건설에서 일하며 현지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 성과를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3년 현지 적응 기간을 가져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한동안 미개척 시장으로 남은 이유는 낮은 소득 수준과 정치 불안 등 열악한 사업 환경 때문이다. 최근 들어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투자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아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에서 비닐봉지 제조업체 킴인터내셔널을 운영하는 김상혁 대표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1988년 무역업을 하는 부친을 따라 이곳에 정착했다. 1998년 제조업을 시작한 그는 지금 직원 250여명을 거느리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아프리카는 인구가 증가하고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땅이지만,중국 인도 레바논 상인 등 기존 세력과 경쟁하려면 발로 뛰는 시장조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진 정보만으로 판단하면 곤란하고,특히 현지 사업가의 말만 믿고 투자하면 혹독한 수업료를 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노동생산성 잘 따져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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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들은 아프리카의 저임금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중국 베트남 등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교육과 훈련이 돼 있지 않은 데다 느긋한 문화 탓이다. 앙골라 루안다에서 만난 곽은구 남광토건 상무는 "한국에서 한 사람이 할 일을 이곳에서는 서너 명이 달라붙는다"며 "생산성을 따져보면 임금이 무조건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생산성을 고려해 임금 경쟁력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를 경험한 탓에 복리후생에 대한 요구 수준은 높다. 가나 쿠마 시에서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 중흥건설의 최주섭 현장소장은 "평일 야근은 25%,토요 근무는 50%,일요 근무는 100% 임금을 더 줘야 하고 일요일은 오후 2시까지밖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등 노동 규제가 까다롭다"고 전했다. 그는 "노조 활동이 강해 2004년에는 잡부 1인당 평균 월급이 25세디(2만1400원)였는데 지금은 70~80세디(6만4200원)로 뛰었다"고 전했다.

◆수시로 바뀌는 법 규정 꼼꼼히 살펴야

법규와 규정이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 낭패를 보는 일도 잦다. 앙골라에서 수산 · 무역업으로 연간 2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인터불고의 안영권 사장은 "정부가 어느날 갑자기 7~9월 조업을 금지하는 바람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짐바브웨에 진출한 한 기업은 관세 규정을 꼼꼼히 파악하지 못해 낭패를 봤다. 짐바브웨는 화장품 완제품에는 무관세,화장품 원재료에는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 일반적인 경우와 정반대였다. 업체 관계자는 "이 규정을 모르고 화장품 제조공장을 인수했는데 관세없이 들어오는 중국산 화장품과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지금은 공장을 놀리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자국 경쟁력 향상을 위해 각국 정부가 합작사 지분을 늘려 달라거나 현지인 고용 또는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한영남 현대중공업 앙골라 지사장은 "그동안 유조선을 한국에서 대부분 만들어 앙골라로 가져왔는데 최근 부분 제작해서 현지에서 조립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며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인력을 따로 훈련해야 하는 만큼 비용이 더 들고 완성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현지 정부와 합작해 건설사를 운영하는 한 기업은 현지 정부가 사업 수주를 대가로 지분율 증가를 지속적으로 요구,대주주 권한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칸 타임'에 익숙해져라

'빨리 빨리'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도 아프리카에서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거의 모든 게 정해진 스케줄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느린 '아프리칸 타임'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정부 관료를 찾아보기 어려우며 차량 등록이나 전화기 설치,인 · 허가 등 행정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론 '급행료'가 필요하다. 현지에서 잔뼈가 굵은 한인업체들은 "부패한 관료들이 '뒷돈'을 요구하지만 현지 법과 문화를 존중하며 기다리는 게 최선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진출 초기에는 충분한 자기자본이 있어야 한다. 가령 공장 설립 비용이 30만달러면 60만달러를 확보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급공사는 정부가 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잦다. 원 · 부자재 재고도 2~3개월치를 갖고 있어야 생산 차질을 피할 수 있다. 앙골라의 국가정보처리센터 구축사업을 끝낸 김명경 삼화통신 현장소장은 "앙골라 정부가 통관비를 내지 않아 자재를 실은 컨테이너 20개가 부둣가에 여러 달 묶여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킨샤사 · 루안다 · 테마=장진모/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