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한 주가조작 의혹으로 법적 분쟁에 휘말렸던 증권사가 1심에서 승소했다. "ELS 상품을 판 금융사가 고의로 주가를 떨어뜨려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투자자들과 "고의가 아니었다"는 증권사의 주장이 대립된 가운데 법원은 주가조작 여부와 상관없는 법리로 증권사의 손을 들어줬다. ELS 주가조작 사건은 지난해 투자자들의 민사소송과 검찰의 국내외 4개 금융사에 대한 수사 착수로 불거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부장판사 서창원)는 28일 대우증권의 ELS 가입자 윤모씨 등 3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1억1000만원 규모의 약정금(중도상환금 등) 반환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윤씨 등은 ELS 만기상환금을 수령하고 나서 소송을 청구했다"며 "만기상환으로 ELS와 관련한 법률 관계가 종료했기 때문에 중도상환금을 돌려 달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씨 등을 대리한 전영준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뒤늦게 증권사의 불법적 행위가 밝혀져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법원이 판단을 회피한 것으로 보여 고법에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ELS는 코스피200지수나 개별 종목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금융상품.만기일에 미리 정해 놓은 지수나 주가 이상이면 약정대로 수익을 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원금과 수익을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 대우증권은 2005년 조기상환 평가일에 ELS 기초자산인 삼성SDI의 주가가 주당 10만8500원 이상을 기록하면 연 9%의 수익률로 투자자에게 조기 상환하는 구조의 3년 만기 ELS를 발행했다. 그러나 삼성SDI 주가는 2005년 11월16일 조기상환 평가일에 대우증권이 해당 종목을 대량 매도한 탓에 10만8000원으로 마감,결국 조기상환 기회가 무산됐다. ELS는 결국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만기일까지 운용된 뒤 33%의 투자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윤씨 등은 지난해 8월 대우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조건의 성취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민법 150조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의외의 판결'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자본시장 전문가 집단인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위법성에 주목하고 증권사를 징계한 뒤 검찰에 통보 조치까지 할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인데도 기각된 것은 예상 밖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며 금융사건에 대해 관대하게 판결하는 법원의 일반적인 경향이 이번에도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에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6개월여 조사 끝에 대우증권,미래에셋증권,캐나다 RBC은행,프랑스 BNP파리바 등 국내외 4개 금융회사를 ELS 수익률 조작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통보 조치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만약 진행 중인 검찰 조사를 통해 위법내용이 확정될 경우 상급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현일/백광엽 기자 hui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