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에서 대규모 '고미술품 명품 박람회'를 준비 중인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62)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재는 돈 많은 사람이나 특수 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때가 됐다"면서 "장롱 속에 넣어둔 개인 소장 문화재를 기꺼이 내놓을 수 있도록 업계가 신뢰를 되찾아 시장에 활기가 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97년부터 고미술협회장을 다섯 번째 연임한 다보성고미술전시관 대표.그는 그동안 고서화 도자기 등 문화재 매매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데 앞장섰으며 2006년에는 회원사들의 고미술품 유통 및 거래 윤리강령을 선포했다.
2003년에는 헌법재판소에 '도난문화재를 무조건 보유자로부터 몰수하도록 한 문화재보호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 '보유 경위를 안따지고 몰수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을 얻어내기도 했다. 같은 해 서화 · 골동품 양도소득세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여 70만명의 서명을 받아 법안 폐지에 성공했다.
그는 "우리 전통문화 기반인 고미술 시장이 15년 가까이 늪에 빠져 있어서야 되겠느냐"며 "7월 말이나 8월 초에 대규모 문화재 장터를 열어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겠다"고 말했다.
고미술품 명품 박람회에는 컬렉터 20여명이 소장한 진귀한 도자기,고서화,민속품 1000여점이 나올 예정이다. 현재 구체적인 전시 일정과 출품작 리스트는 나오지 않았지만 보물 · 국보급 문화재가 포함된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침체에 빠진 고미술 시장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좋은 작품을 봐야 그만큼 감식안도 키울 수 있습니다. 고미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꾸 이런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봐요. "
김 회장은 그동안 고미술 시장 침체 현상도 시장을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부 장사꾼의 수작이 가장 큰 이유라고 전제한 뒤 남은 임기 동안 '가짜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가짜가 워낙 교묘하고 해마다 새로운 가짜 제작 기법이 나와 진위를 가리기가 쉽지 않아요. 전문가들도 종종 속아서 가짜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실제 가짜 문화재 제작 수법은 손으로 직접 만드는 방식부터 컴퓨터 등을 이용하는 방식까지 다양하다. 날이 갈수록 정교해져 문화재 전문가들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김 회장은 "가짜 그림을 만드는 대표적 수법으로는 베끼기(특정 작품을 한지에 똑같이 모사),앞장 뒷장 떼기(그림을 물에 불려 두 장으로 분리),낙관 바꿔치기,가짜 도자기를 만들어 값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만든 가짜는 수리하는 과정이 아니고서는 가짜임을 확인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중국과 북한에서 만든 가짜 고미술품이 국내에 들어와 유통되면서 고미술 시장이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작년 12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고미술품 기획전 '한국 고미술대전,진짜와 가짜의 세계' 전시회를 열었다. 도자기 고서화 목기 등 고미술품 진짜와 가짜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전시회로 무려 5만여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고미술에 대한 애호가들의 관심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작년 4월에는 서화 · 도자기 · 금속품 · 민속품 4개 분야 문화재 1885점 중 위작 감정 897점의 DB 도록(www.kacdb.com)을 공개했다. 개인 소장자들이 진위 여부를 가려 달라고 의뢰한 작품 중 위작으로 판명난 892점(47.3%)을 공개한 것이다.
시장에서 가짜 미술품을 몰아내기 위해 작년 11월에는 회원 300명이 모여 자정 결의대회를 하고 정화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고미술 시장이 위축되면서 고가의 고미술품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걱정했다.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만,진짜를 가짜로 매도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는 그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들이 가짜로 위장돼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년 12월 조선시대 국보급 도자기가 가짜로 위장해 일본으로 빠져 나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부산에 사는 조모씨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인데 일부 고미술 상인이 위작으로 속여 1억5000만원에 구입한 뒤 일본 고미술상에 수십억원의 고가에 팔아넘긴 일도 있다고 소문이 돌고 있지요. "
그는 전남 강진군청이 2007년 '청자상감연국모란문과형주자'를 10억원에 구입한 것도 시가 감정을 잘못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자체가 예산을 낭비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해요. 일부 전문가들의 감정을 바탕으로 구입했겠지만 주전자의 뚜껑이 없고 손잡이도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도자기는 국내 유통가를 기준으로 8000만~9000만원대로 예상합니다. "
그는 "문화재는 돈 많은 사람이나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골동품은 미래의 DNA가 들어 있는,다시 새로운 문화활동의 씨앗을 키워내는 밑거름입니다. 골동품과 쓰레기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분할 줄 알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박물관에 가서 우리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 후에 어떠한 일이든 해야겠지요. "
요즘 김 회장은 고미술 감정 전문가를 양성하고,고미술품의 진위 구별이나 가치판단 능력을 길러주는 16주 과정의 고미술 문화대학 감정아카데미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말에는 이를 확대 개편한 '고미술품 특수대학원'을 개설할 예정이다. 고미술 문화대학 감정아카데미에는 그동안 은행 및 증권사 임원,교수,변호사 등 정치 · 문화 · 경제계 인사 800여명이 수료증을 받아갔다.
김 회장은 40여년간 고미술계에 투신해 왔으며 1988년 다보성고미술전시관을 개관,대표를 맡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