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외교단지 내 북한대사관 앞.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단 200여명의 북한인들이 한꺼번에 대사관 밖으로 몰려 나왔다. 매주 토요일에 실시하는 정신교육을 막 끝내고 나오는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저들 중 일부는 귀국명령을 받았을 것"이라고 함께 있던 한 대북사업가는 말했다.

북한당국이 중국에 주재하는 일부 인력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사상검증에서 좋지 않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과 불요불급하다고 판단되는 인원들에게 주로 귀국명령이 하달되고 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혹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북한을 등질 수 있다는 의심이 들 만한 사람들을 우선 귀국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요불급한 인원 정리를 위해 사업계획 등을 다시 제출토록 하는 지시도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신규사업은 전면중단된 상태다. 한 대북사업가는 "북한산 더덕과 장뇌삼 수입을 위해 올초부터 접촉하던 북한 무역일꾼이 갑자기 평양으로 돌아갔다"며 "다른 사람 소개도 않은 채 사라져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베이징에 남아있는 북한 사람들도 초긴장 상태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상당히 불안해 한다는 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각 기관별로 베이징에서 무역업을 통해 활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물리적 충돌이라도 빚어질 경우 사업 환경이 매우 나빠지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각 기관이나 개인이 보유한 귀중품을 내다 팔거나 대금을 선지불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현금 확보에 열심인 상황이다.

북한에서 나물 등을 수입, 한국으로 수출하는 한 무역상은 "북한에서 파견자들이 골동품이나 그림 등 돈 되는 것은 뭐든 내다 팔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의류 임가공을 하는 한 중국사업가는 "물건을 수송해주는 북한 무역일꾼으로부터 선금을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았다"며 "물건도 안 받고 돈 먼저 줄 수는 없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현재 백두산 삼지연의 지하 5층 벙커에 머물고 있다"며 "이라크전쟁 때 미국의 정밀타격 능력을 본 뒤 공사를 시작한 지하요새로,웬만한 미사일공격에도 큰 충격을 받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 군부는 남북교류로 인해 통치체제가 불안정해지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 금강산 관광중단과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북한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남북교류의 단절을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