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새 연립정부의 예산담당 장관이 정부 예산을 부당하게 사용한 혐의로 17일 만에 전격 물러났다. '허리띠 졸라매기'에 앞장서야 할 장관이 오히려 '눈먼 돈 빼먹기'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지자 연립정부가 출범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정부의 데이비드 로스 예산담당 장관(44 · 사진)이 정부 예산으로 동성애 연인의 주택 임대료를 내왔던 사실을 시인하고 사임했다고 29일 보도했다.

로스 장관은 런던에 있는 동성 연인 소유의 집에 살면서 주택 임대료 명목으로 8년간 총 4만파운드(약 7000만원) 이상을 의회에 청구해 수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하원 의원들은 지역구와 떨어져 런던에 체류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주택 임대료가 지원되나 배우자나 친척 지인의 집에 살면 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

로스 장관은 성명을 통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서였지,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면서도 "잘못을 시인하며 해당 금액을 모두 반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11일 연립정부가 출범한 이후 발생한 핵심 관료의 첫 사퇴 사건이다. 이 때문에 영국 내에서는 연립정부가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심각한 수준인 영국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예산 장관이 오히려 정부 예산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자민당 출신인 로스 장관은 지난 12일 연립정부에서 자민당이 차지한 직책 중 두 번째로 중요한 예산담당 장관에 임명돼 각료 임금 삭감을 포함,62억파운드에 달하는 공공지출 절감 대책을 진두지휘해왔다.

한편 그의 후임으로는 같은 당 대니 알렉산더 스코틀랜드담당 장관이 임명됐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