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루스벨트로(路)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홍콩계 헨리 촹 사장은 대만 정부에 대한 찬사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만 정부만큼 외국인 투자에 개방적인 나라는 드물 겁니다. 2만달러 이하의 소액 투자도 까다로운 제약 없이 투자허가서를 내줍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창업의 씨앗을 꽃피울 수 있도록 기업가 의욕을 북돋우는 것이죠."

김헌성 삼성전자 타이베이법인장(전무)은 대만 정부의 저금리 정책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대만의 한 중견 기업 회장이 이달 초 은행에서 신디케이트론으로 1200억원가량을 빌렸습니다. 이자가 얼마인지 아세요. 연 1.25%라고 합니다. "

대만 정부의 파격적인 기업 우대정책이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만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으로부터 '국가 경쟁력 8위'라는 상장을 받은 지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아 지난 28일 법인세 3%포인트 추가 인하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내놨다.

◆세계 최고 성장률 구현

IMD는 지난 20일 대만의 국가경쟁력을 작년 23위에서 8위로 평가하면서 정부 부문의 효율을 6위에 올렸다. 민간 부문보다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수잔 로잘렛 IMD 부주임은 이에 대해 "먼저 위기에 빠진 국가가 위기 탈출 또한 빠르다(First In First Out)"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2008년 초부터 불황의 늪에 빠지자 대만 정부는 다른 국가와 달리 일찌감치 기업 살리기에 전념했다는 설명이다.

2년여가 지나 대만은 경이로운 실적을 올렸다. 올 1분기 경제 성장률은 31년 만에,민간투자 성장률은 무려 35년 만에 각각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잉주정부는 올해 수출 성장률이 23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법인세 인하 조치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주마가편(走馬加鞭)'인 셈이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소비 진작을 위해 세대당 1만대만달러에 해당하는 쿠폰을 나눠줬다. 천수이볜정부 시절과 달리 경기 부양을 위한 공공 건설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전국 교통망을 확충하는 데 1조4523억대만달러를 투자키로 하는 등 12대 공공 건설 프로젝트에 3조9500억대만달러(정부 투자 금액 2조6500억대만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이민호 KOTRA 타이베이센터장은 "법인세 인하로 일각에선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문제 삼고 있다"며 "하지만 대만의 최대 장점은 외환보유액이 1조달러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금융안정망"이라고 지적했다. 올 3월 기준으로 대만의 공식 외환보유액은 3550억달러.하지만 대만 중산층들이 미국 일본 등에 갖고 있는 계좌까지 합하면 1조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안 밀월에 기업투자 봇물

대만 정부는 법인세,환율,금리 등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 변수들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협력협정(ECFA)을 강력히 추진하며 미래 먹을거리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안 ECFA 실무 담당자인 시천팡 대만 경제부 국제무역국 부국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만만큼 중국을 잘 아는 곳은 없을 것"이라며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관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수이볜정부 시절(2000~2008)의 '잃어버린 8년'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 법인장은 "중국과 단교 정책을 추진했던 과거 정부 시절만 해도 대만은 중국을 소홀히 했고,이 틈을 한국이 활용했다"며 "앞으로는 한국에 이런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올초 반도체와 LCD 등 첨단 산업의 대중 투자 진출을 해제한 것은 대만 정부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중국이 7.5세대 LCD 공장의 투자 유치를 위해 대만에 러브콜을 보내자 이에 화답한 것.국제무역국은 자국 기업인 AUO,치메이 등에 대해 투자 승인 여부를 심사 중이다.

중국과 대만의 밀월관계를 감안할 때 승인은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다. 이 때문에 중국 내 LCD 생산기지 확장을 노리는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는 중국의 공장 유치가 확대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세계 최대 LCD TV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대만 업체들이 한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로 올라섰다.

지난해 중국이 대만에 쏟은 관심은 각별했다. '세계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으로 불리는 대만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문량이 급감해 휘청거리자 중국은 각 성의 구매사절단을 총 여덟 차례 파견,149억8700만달러를 대만에 풀었다. 지난달에도 상하이시의 46개 기업이 대거 대만을 찾아 1억730만달러의 주문을 냈다.

시 부국장은 "한국은 미국 등 전세계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현재 대만엔 중국이 전부"라며 "ECFA 체결이 대만 글로벌화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후이린 중화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양안 관계 진전에 따른 기대심리 덕분에 IMD 등 외부 전문가들의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베이=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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