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2014년부터 사용되는 초 · 중 · 고교 교과서 내용을 현재보다 20% 이상 줄이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과목 간 중복되는 부분의 통합을 통해 교과서 내용을 감축하는 대신 교과특성에 따라 팀별 주제발표,토론,실습 등 다양한 교육방법으로 학생들의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키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평가 방식도 수행평가를 강화해 학부모가 숙제를 대신해 주는 그간의 폐단을 없애도록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경우 수업시간에 교사가 직접 관찰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학교 학습의 양을 줄여 학생 부담을 경감하고 스스로 호기심을 자극해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른다는 명분에선 환영할 만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사교육 경감이라는 잠재적 효과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과도한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서 하고 싶은 학습활동과 꼭 필요한 학습경험을 한다는 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수월성 추구나 개성을 살리는 선진국형 교육이 되려면 외적인 과제 부여보다는 내적인 동기유발과 집중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교육당국의 조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언론과 뜻 있는 학부모들이 우려하는 바는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의 학력(學力)이 떨어진다고 의심되는 현실에서 수업량 줄이기를 골자로 하는 이번 조치가 아이들에게 학습 부담 경감 효과보다는 자칫 공부 안 해도 되는 풍토를 조장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 지적은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학교 공부에 요구되는 학습량을 포함해 요즈음 아이들의 독서량이 여러 다양한 매체 개발로 인해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인터넷과 같은 다양한 매체가 개발 · 보급되었다고 하더라도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폭넓고 깊은 사고력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경감되는 수업량을 능가하는 독서활동과 같은 학습량 증진 방안이 아울러 강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에 내재된 문제점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정작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교육당국이 내놓는 일련의 조치들이 그 성패에 앞서 여전히 국가독점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정의 국가독점 문제는 두 가지 차원에서 개선되어야 한다.

첫째, 거시적 차원에서 학교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은 학교장 책임 아래 단위 학교에 맡겨 책무성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교육메뉴가 존재하게 돼 학생과 학부모의 실질적인 학교선택이 가능하고,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진 고등학교와 자율을 생명으로 하는 대학의 학생선발권이 회복된다. 만약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당국이 계속 관할하고자 한다면,그 대강만을 제시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리고 평준화 정책은 모든 학교에 동일한 교육내용 부과를 전제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국가 독점 문제는 평준화 정책의 폐지와 함께 고려돼야 한다. 평준화 정책이 교육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건 여기서도 확인된다.

둘째,미시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수업방법과 평가방식조차 국가가 시시콜콜 제시하는 그간의 폐습도 개선되어야 한다. 이번에 중간 · 기말고사 서술형 시험을 전국 모든 학교에 일률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도 지양하고 학업 평가방식 자체를 단위 학교에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참여정부가 논술고사문항마저 예시해 대학의 자율권을 크게 훼손시켜 비난받은 것과 똑같은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짝통자율'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자율이 되어야 한다.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