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신흥시장국의 급격한 자본유출입을 막기 위한 국제협력이 필요하다"고 31일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에 미국이 찬성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한국이 올해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성공적인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안전망

버냉키 의장은 이날부터 이틀간 한국은행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주최하는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에서 녹화영상 메시지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는 선진국에서 발생했지만 그 충격으로 신흥시장국에서 급격한 외국자본 이탈이 발생했고 최근엔 다시 외국자본이 집중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급격한 자본 유출이나 유입은 모두 신흥시장국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버냉키 의장은 "이 때문에 국제금융 시스템을 강화하고 적절한 금융 규제 및 금융회사의 자본 · 유동성 확충을 위한 국제협력 확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한은은 버냉키 의장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한국이 제시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출구전략은 나라마다 달라야

버냉키 의장은 "한은도 중기적으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처럼 완화적 정책에서 벗어나는(exit)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회복 초기 단계에서 한은이 서둘러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것과 지나치게 오래 완화적 정책을 유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냉키 의장은 다만 "나라마다 경제 여건이 다르므로 출구전략의 적절한 시점도 나라마다 다를 것"이라며 "각국 중앙은행은 이러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국의 경제 발전 상황을 주의깊게 관찰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은이 취해 온 각종 정책과 신속한 대응이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회복에 크게 기여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신흥시장국 위상 강화

트리셰 ECB 총재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신흥시장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변화 양상을 진단했다. 그는 "이제 신흥시장국 전체가 하나의 그룹으로서 세계경제 힘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했다"며 "금융위기가 신흥시장국 경제의 글로벌 지배구조로의 통합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리셰 총재는 "국제사회는 선진국 및 신흥시장국으로 구성된 G20 회의를 국제경제 협력의 최우선 협의체로 인식하고 있다"며 "G20 회의가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뿐만 아니라 각국 정상 차원에서 글로벌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협의체로 정착되는 게 긴요하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 역시 "세계적 차원에서 금융개혁이 효과를 발휘하고 국가 간 일관된 협력 체계를 유지하려면 한국이 의장국을 맡고 있는 G20의 지도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상은/박준동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