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IC 사거리에서 과천 방면으로 400~500m 정도 가다보면 오른편에 이마트 양재점과 코스트코 양재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큰 길을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있는 두 점포는 위치나 매장 면적(1만여㎡)에선 별반 차이가 없지만,운영방식은 180도 다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낱개로 포장된 제품,그리고 친절한 서비스로 무장한 이마트가 '백화점급 할인점'이라면,제품을 박스째 쌓아놓기만 한 코스트코는 '창고형 할인점'의 전형이다. 현금과 수표 및 삼성카드 외엔 통하지 않는 결제수단,점원을 찾기 힘들 정도의 서비스,이마트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4000여개에 불과한 품목 수,3만5000원에 달하는 연회비,주말이면 1~2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불편한 주차시스템….언뜻 보면 코스트코가 이마트의 상대도 안 될 것처럼 보이지만,소비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코스트코 양재점의 연매출(약 3600억원)이 이마트 양재점(약 1500억원)을 압도한 것이다.

비결은 '저렴한 가격'과 '질 좋은 상품'.인테리어비 인건비 상품관리비 등 각종 비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제품 가격을 그만큼 낮춘 것이 소비자들에게 '먹혔다'는 얘기다.

이마트가 10여년 전 접었던 '창고형 할인점'을 다시 열기로 한 이유다. 신세계는 1993년 이마트 1호점인 서울 창동점을 국내 첫 창고형 할인점 형태로 열고 이듬해에는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프라이스클럽도 들여왔지만,1990년대 말 백화점과 같은 '편안한 쇼핑'을 기치로 내건 '한국형 할인점'을 선보이며 창고형 할인점에서 완전히 손을 뗐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31일 "오는 8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이마트 구성점(매장 규모 9355㎡)을 '창고형 할인점'으로 전환키로 했다"며 "코스트코와 비슷한 형태지만 누구나 들러 쇼핑할 수 있는 비회원제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신선식품을 제외한 대다수 상품이 '박스' 단위로 판매되는 창고형 할인점 형태로 구성점을 운영할 계획이다. 가격은 제품에 따라 주변 이마트 점포보다 10%가량 싸게 판다는 구상이다. 박스를 풀어헤치고 진열할 필요가 없어지는 데다 최소 인력으로 점포를 운영하는 만큼 각종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6만~7만개에 달하는 품목 수를 대폭 줄이는 대신 일부 제조업체에 물량을 몰아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예컨대 협상을 통해 A업체의 샴푸만 독점적으로 매장에 진열하는 조건으로 납품단가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마트가 해외에서 직접 들여오는 '직소싱 제품'과 이마트 PL(자체 상표) 상품도 진열대에 오른다.

이마트가 구성점을 '재도전 무대'로 선택한 것은 이 일대에 창고형 할인점의 주고객인 '구매력 있는 중산층 이상 소비자'들이 밀집한 데다 지하 1개층에 877대의 주차공간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구성점이 안착할 경우 매출이 부진한 점포 위주로 창고형 할인점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 재도전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스트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함께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질 좋은 상품' 덕분이란 이유에서다. 코스트코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